# 장면 하나.
30대 중반의 홍모씨. 직업 특성상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는 잦지만 그때마다 어김없이 잠을 청하는 그녀. 심지어 정명훈이 지휘하는 음악회에서도 졸았던 그녀가 지난 21일 열린 대구시립교향악단 신임 지휘자 취임 기념연주회에선 단 한번도 졸지 않았다. '강마에' 덕분이다.
"베·바를 보기 전엔 클래식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베·바 이후로 클래식 음악이 좋아졌다"면서 "이번 연주회에선 유난히 지휘자의 손 끝에 집중했다"고 했다.
때마침 취임식을 가진 대구시향 곽승 지휘자는 '곽마에'라고 불리며 독특한 카리스마로 인기몰이중이다.
# 장면 둘.
간송미술관은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대전'을 열고 김홍도·김정희·김득신 등의 명품 조선서화 108점을 전시했다. 이번 전시에선 관객들이 이례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전시회 기간동안 20만명이 다녀가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신윤복의 '미인도'에 쏠렸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혜원이 진짜 여자인지 궁금해했다. 간송미술관측은 "혜원이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이 쇄도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TV가 예술과 사랑에 빠졌다. 고미술과 클래식이라는, 대중에겐 다소 낯선 분야지만 드라마로 방송되면서 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주인공 신윤복은 가히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문화를 휩쓸고 있다. 진원지는 지난해 출간된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 '신윤복이 여자'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 픽션 소설은 지금까지 4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 드라마는 한국화 전문가, 한국화가를 동원해 두 작가의 명화 제작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덕분에 "'고루하다'고만 생각해온 한국화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는 평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올라온다. 여기엔 미술용어나 그림 그리는 기법, 두 화가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지한 논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별 관심없이 지나치던 '어진화사'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남장여자' 신윤복은 곧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연수 감독의 영화 '미인도'가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 국내 최초 신윤복을 소재로 한 기획 영화로 새로운 사극 트렌드인 팩션 무비를 표방,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올 것으로 기대된다.
'바람의 화원'으로 눈이 즐겁다면,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로는 귀가 즐겁다. 괴짜 지휘자 '강마에'는 여러 클래식음악을 들려줘 클래식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드라마를 넘어서 클래식 음반계마저 평정하고 있다.
이달 초 발매된 '베토벤 바이러스' 공식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 '베토벤 바이러스 The Classics Vol. 1' 은 발매 25일만에 2만5천장이 판매되는 등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총 21곡의 클래식곡이 수록된 음반은 드라마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귀에 익숙한 클래식곡을 들을 수 있다. 통상 클래식 앨범은 5천장만 넘어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며 1만장 이상이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 음반계엔 이례적인 일이다.
서점가도 예외가 아니다.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등 클래식관련 책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물론 부작용이 없진 않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한 것에 대해 "심각하고 고약한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다"며 미술사학계는 반발하고 있다. 드라마 내용이 지나친 픽션으로 역사인식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것.
그래도 이 가을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지는 건, 예술이 한층 우리에게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가까운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찾아보는건 어떨까. 어느 전시장에서 문득, 우리시대 신윤복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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