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막내인가? 그렇다. 최소한 인문학적으로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동해의 한점 섬, 울릉도에서도 87.4㎞나 떨어진 절해고도, 밤낮없이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안쓰러움은 국토의 막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행여 불면 꺼질세라 쥐면 터질세라, 애처로워 못 견디는 늦둥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달라진다. 화산암의 연령 측정 결과, 독도는 약 200만년 전에 이미 화산활동을 종료했으나, 울릉도는 약 9천년 전까지도 활동했던 것(경북대 울릉도독도연구소 자료)으로 나타났다. 독도는 울릉도보다 최소 199만년이 앞서 탄생한 셈으로, 울릉도의 까마득한 맏형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독도는 온전한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독도가 생긴 이래 이제껏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든 파도 때문이다. 성난 물결은 섬의 아랫도리를 파고들었고, 거센 바람은 속살을 헤집었다. 이 때문에 바위산은 무너져 내리고 섬 둘레는 수직 절벽이 되고 만다.
독도는 달리 화산섬 자연사박물관이 아니다. 화산섬의 생성에서 최후까지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섬이 독도이다. 화산재와 그 속에 박힌 암석덩이, 그 암괴(岩塊·바위 덩어리) 사이로 비집고 흘러든 용암. 그것들이 다시 침식으로 바스러지고, 그 쇄설물은 다시 파도의 힘에 따라 밀려들고 빠져나갔다.
장군바위 뒤편에는 토사가 조류에 밀려 바다 가운데로 뻗은 약 15m가량의 모래톱이 발달해 있다. 모래톱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모래가 아닌 주먹만한 몽깃돌 무더기이다. 독도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모래톱을 보고 있노라면 파도의 힘에 전율한다. 물결이 동쪽에서 들어올 때면 모래톱은 해변에 붙어 있다. 바람이 다시 서풍으로 바뀌면 모래톱 끝은 동으로 휘고 바다를 가로질러 장군바위에 잇닿는다. 거대한 몽깃돌 무더기가 파도에 휩쓸려 하루아침에 다른 곳에다 둑을 쌓아버리는 기막힌 광경, 그곳이 독도다.
모래톱을 지나 동도와 서도 한중간을 가로지르면서 서도를 올려다보면, 섬의 살점이 뭉텅 떨어져나가, 사태(沙汰)진 곳을 볼 수 있다. 어업인숙소 마당 귀퉁이와 맞닿는 골짝 끝 해안에는 수십t은 됨직한 바위 두개가 무너져 있다. 지난 초여름 비에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한다. 골의 중간쯤에도 농짝만한 바위덩이 하나가 언제 굴러 내려올지 모르게 아슬아슬 걸려 있다.
아직도 바람이 거칠거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이면 주먹만한 돌들이 사정없이 굴러 내린다. 그런 날 아침이면 마당에서 돌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이 섬이 생성된 지 길게는 460만년이나 되었다는데 아직 이렇듯 활발한 풍화작용을 하는 것이다.
동·서도를 지나는 뱃길에는 바위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크게는 봉고차 정도, 작게는 밥상만 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름 없는 바위들은 한결같이 일본을 향해 달려드는 짐승처럼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완만하게 경사진 모양이다. 서풍이 부는 날은 물결이 달려와 꼬리 쪽에서 올라타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아이들 말뚝박기 놀이 같다.
태극기 펄럭이는 어업인숙소를 지나면 해수면과 거의 비슷하게 시멘트 길이 나있고, 바위로 올라가는 두 곳에는 간이 철계단이 놓여있다. 과거 최종덕씨가 건조장 용도로 건물을 세웠던 곳이다. 아직도 바닥에 시멘트 자국이 있는 이곳은 서도의 유일한 산책로 30여m이다.
옛 건조장 옆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동굴이 있다. 지질학적으로 말하는 해식동굴이다.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물이 시퍼런 동굴은 바로 어업인숙소 계단 아래까지 뚫려 신비함을 더한다.
이렇듯 독도의 구석구석은 오묘하고 신비스러우며 신성스럽기까지 하다. 일찍이 우리는 이 독도의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독도를 '응석받이'로서가 아니라 살가운 보배덩이로 여겼음을 안다. 너부죽이 엎드린 바위, 까맣게 반짝이는 몽깃돌 해변, 어두컴컴한 동굴 안 물보라까지, 우리들의 기억과 경험 안에서 함께 성스러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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