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짝짓기도 세월따라

짝짓기 계절 가을, 월동장비 준비에 혈안이 된 남녀들을 보면서 중매 세 건이면 천당행이 보장된다는 속설을 새삼 실감한다. 그만큼 결혼이 어려운 대사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을 위대한 지도자로 받들어 모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구가 국력이라는 그의 생각, 결혼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명확한 혁명과업수행의 명분이 되었다. 전략적으로도 맞아 떨어졌다. 원가 측면에서 사람 한 명을 출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다른 물품생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투자대비 효용에서 가장 큰 이윤을 남긴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 쌍을 결혼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10만위안(약 2천만원)을 넘어섰다. 2003년 평균비용이 8천500위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사이에 무려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여 만든 생산체제가 시운전도 하지 않고 곧장 해체된다는 점이다. 즉 이혼의 증가이다. 현재 베이징을 선두로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대도시의 이혼율이 50%선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의 결혼세태를 보여주는 한탄 섞인 우스갯소리 한마디를 들어보자.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신기한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를 보지 못했다. 여자가 남성화되고 남자가 여성화되고 있다. 결혼을 하려면 반지를 껴야 하고, 금은 보석을 몸에 걸쳐야 하고, 최소한 롤스로이스 정도는 타야 한다. 고급간부의 자녀들과 결혼하려던 유행도 옛말이다. 예쁜 여자를 애인으로 두는 것이 대세이다. 사랑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돈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 그리고는 법원 문짝이 부서지도록 이혼시합을 벌이고, 혼인등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남남이 된다. 그래서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동거가 좋다."

사실 예전의 중국은 이렇지 않았다. 1979년 베이징, 한 쌍의 신혼부부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길게 늘어선 골목길에 수십 개의 탁자가 놓여지고, 친인척과 동네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음식을 나누고 결혼사탕과 혼인주를 권한다. 찾아오는 객들도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었다. 마오쩌둥 어록이 새겨진 거울, 이불과 베개, 또 어떤 이는 양식표를 모아서 주기도 한다. 몇 평 안 되는 단칸 신방은 신랑이 준비한 나무궤짝, 침대, 옷장과 신부가 가져온 '4대 혼수품' 시계, 자전거, 재봉틀, 라디오로 꾸며진다.

1985년의 베이징, 또 다른 한 쌍이 결혼을 준비한다. 우선 그들은 결혼에 필요한 몇 가지 필수서류를 갖춰야 한다. 호적부, 직장이나 지역에서 발행하는 결혼증명서, 그리고 혼인건강검진표이다. 중앙 모부서에 근무하는 신랑, 중요한 국가기밀을 다루는 직책이라 결혼증명서를 받는데 신부의 인터뷰도 필요하다. 신랑의 직장에서 취조에 가까운 인터뷰를 마친 신부 왈, "나 결혼 안 할래". 혼인건강검진표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내서 병원을 찾는 일도 그렇지만 검사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결혼생활에 대한 영상물을 봐야 하고 생리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혼인수속을 하는 데만 한 달여 시간을 소비했다.

어렵게 결혼하던 시기는 이혼하기도 어려웠다. 결혼만큼이나 이혼의 절차도 복잡했다. 그러나 2003년 10월 1일 새로운 '혼인등기조례'가 제정되면서 이 까다로운 결혼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직장이나 지역의 증명이 필요없어졌고, 강제성 혼인건강검진도 없어졌다. 본인 호적부와 신분증만 있으면 5분 이내에 결혼등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2003년과 2004년 중국의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중국이다. 인구 때문에 강한 중국, 아쉽게도 결혼하기도 쉽고 이혼하기도 쉬워서인지 출산율이 둔화되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여 한 명의 자녀를 낳는 경우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인구 한 명을 늘리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말이고, 만약 지금 추세라면 향후 중국이 13억 인구를 유지하려면 애써 노력한 발전의 과실을 몽땅 쏟아 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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