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생 참 돌고 돌죠?…삼성라이온즈 선동열 감독

1980년대 후반 어느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구 시민야구장을 찾은 기억이 난다. TV에서만 보던 야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 속에 찾은 야구장은 정말 크고 멋있었으며 관중들의 환호성은 절로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야구장 나들이 분위기는 한 선수 때문에 무참히 깨졌다. 삼성의 숙적이던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 선동열. 불펜에서 그가 몸을 풀기 시작하자마자 들뜬 야구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포수의 미트를 뚫어버릴 듯 불 같은 강속구로 타자들을 제압한 그는 당당히 마운드를 내려왔고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코흘리개 야구팬일 때 그렇게도 무섭고 미웠던 투수가 삼성의 사령탑이 된 것도 어느새 4년째. 선수 시절 늘 삼성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그는 공교롭게도 2005년 감독으로 부임한 뒤 이미 두 번이나 삼성에 한국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안겼다. 올 한 해 뜨거웠던 프로야구 열기 속에서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어느 시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낸 선 감독을 4일 경산 볼파크에서 만났다.

◆고난의 2008시즌, 절반의 성공

-시즌 때보다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이번 시즌은 참 힘들게 보내셨죠?

"매일 시합을 하다 보니 건강관리가 쉽지만은 않죠. 시즌을 마치고 마음이 좀 가벼워지니 괜찮아진 것 같네요. 감독 생활 4년째인데 우승할 때보다 올 시즌이 더 힘들었습니다.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부상 선수가 속출했고 양준혁, 제이콥 크루즈, 박진만 등 믿었던 베테랑들이 부진하다 보니 7월에는 올 시즌을 접을까 고민도 많이 했죠."

-어려움 속에서도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 시즌 소득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단기전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를 준플레이오프에서 3대 0으로 누르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잖아요. 투수들이 지치지만 않았다면 플레이오프 이상을 노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 등 젊은 선수들이 큰 경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소득이에요. 이들 셋은 올 시즌 많이 성장했어요. 내년에는 이 친구들이 타선의 주축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8.44m에 인생을 걸다

-현역 시절 삼성에 아픈 기억을 많이 선사하셨는데요? '안타 제조기'로 불린 장효조 선수와도 여러 번 부딪쳤죠?

"에이, 그래도 먼저 당한 쪽은 저예요. 1985년 대구에서 삼성과 치른 프로 데뷔전에서 2대 5로 완투패를 당했어요. 당시 김일융 선수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7회까진 0대 0으로 나가다 8회 5점을 주는 바람에 지고 말았죠. 데뷔 초 효조 형에겐 결정적일 때 몇 번 맞았어요. 데뷔전 첫 피안타도 효조 형이고 86년엔 7회 2사까지 퍼펙트 경기를 하다 효조 형에게 안타를 내주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인생이 참 돌고 도네요. 지금 제가 그 팀 감독을 하고 있으니…."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명승부를 여러 번 연출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하나만 꼽기는 쉽지가 않군요. 일단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당시 선발 투수였던 선동열의 역투와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3점 홈런 등으로 5대 2로 역전승을 거뒀다), 1987년 (최)동원 형과 서로 200개 넘게 공을 던지면서 15회 완투 끝에 무승부로 끝낸 경기가 떠오르네요. 그땐 지고 싶지 않은데 빨리 승부가 안 나니 참 난감하더군요. 일본 주니치 시절을 포함해 우승을 결정짓던 경기들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선수 시절부터 술을 즐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술에 얽힌 일화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술과 사람을 좋아했어요. 젊을 땐 보통 소주 7, 8병은 마셨던 것 같네요.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이후로 건강상 한동안 끊었지만요. 프로 2년차 때 상대팀(MBC 청룡) 투수였던 정삼흠 선수와 밤새 술을 마시고 이튿날 선발 맞대결을 벌여 2대 0으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아마 상대팀에서 제가 못 던지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소주를 7병씩 먹고 양주도 2병씩 해치웠으니 경기 전까지도 술이 완전히 깨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술 때문에 경기를 그르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선수들에게 술을 못 마시게 하진 않아요. 다만 그 때문에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프로죠. 또 혹시 술 자리에서 시비가 일더라도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인이잖아요."

-1994년 이종범 선수, 가수 양수경씨와 함께 '투 앤 원'이라는 팀을 만들어 음반을 내신 적이 있죠?

"민망한 기억인데…. 구단에서 보너스를 줘야 하는데 해태가 자금 여력이 없는 팀이다 보니 음반 회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돈으로 갈음하려 했던 것 같아요. 음치였지만 재미있겠다 싶어 한 번 해봤는데 이게 얼마나 힘들던지. 보통 술기운에 흥을 빌려 노래를 부르잖아요. 근데 맨정신인데다 한 곳에 갇혀서 같은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하니 괴롭더군요. 종범이와 1천만원씩 받긴 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녹음을 하고선 신경을 딱 끊었죠. 얼마나 팔렸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평균자책점에 주목하라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승리는 야수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투수 자신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방어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투수일수록 하체를 잘 쓰죠. 축이 되는 다리가 안정되고 디딤발을 멀리 끌고 나가 디디면 힘이 있는 공을 던질 수 있습니다. 팔과 어깨로만 던지면 오래가지 못해요. 일본 진출 첫해 때 새삼 느꼈죠. 당시에 2군으로 떨어지는 등 정말 힘들었는데요.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상체로만 던지다 보니 구위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선발 투수진에 비해 불펜에 지나치게 전력이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선발 투수가 경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선발이 6회 정도는 버텨줘야 불펜도 힘을 덜죠. 하지만 올해는 선발 세 자리에 구멍이 나버렸어요. 윤성환만 제자리를 지켰을 뿐, (배)영수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고 외국인 투수들도 기대에 못 미쳤는데 경기는 이겨야 했으니 불펜의 부담이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죠. 고맙게도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역대 최고의 투수를 논할 때 선동열, 최동원, 박찬호를 두고 늘 의견이 분분합니다.

"4년 선배인 동원이 형은 제 우상이었어요. 빠른 공과 낙차 큰 커브가 일품이었죠. 연투 능력이 탁월한 무쇠팔이기도 했고요. 1981년 대표팀에서 합숙훈련을 하며 많이 배웠어요. 던지는 걸 직접 보니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미국 무대를 개척한 선구자인 찬호도 대단한 선수죠. 빠른 공을 던지는 데다 변화구도 다양하고. 대투수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나도 젊을 때 해외에 갔더라면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지만 선배로서 찬호는 정말 대견스러워요. 누가 낫다 우열을 가리긴 애매하겠죠?"

◆가족, 미안하고 그립다

-대구가 외지인에게 그리 살가운 도시는 아니라고들 합니다. 더구나 격한 라이벌 관계였던 해태 출신에다 고향도 전라도여서 연세 많은 대구팬 중에는 탐탁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 이곳 분들이 쉽게 마음을 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크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에요. 지내다 보니 정도 들고요. 능력을 보지 않고 출신 지역을 가려서 쓰기에 우리나라는 좁죠. 저도 대구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어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여기서 사귄 분들도 있고. 다른 곳에서 손님이 왔을 때 안내할 맛집도 여러 곳 찾아뒀습니다. 여기 사는 분들보다 더 잘 알 걸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텐데 어떻게 푸시는가요?

"운동으로 풉니다. 술은 줄였고 담배는 끊었는데 올 시즌엔 담배 생각이 유독 많이 나더군요. 팔공산에 바람을 쐬러 갔다가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어 중간에 포기한 적도 있었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러닝머신을 이용하고 사우나에 들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죠. 혼자 지내다 보니 저녁 식사가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기도 해요. 약속이 없을 때는 샌드위치를 사다가 집에서 TV를 보며 먹기도 합니다. 혼잔데 따로 만들어 먹긴 좀 그렇잖아요."

-대구에 집을 구해 혼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의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생활이 편치는 않을 텐데요?

"그나마 똑같이 홀아비 신세인 한대화 수석코치가 같은 오피스텔에 사니 덜 외롭죠. 매년 겨울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가긴 하지만 가족들에겐 늘 미안해요. '빵점'짜리 아빠, 남편입니다. 매일 전화를 해도 평소에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긴 어려우니까. 대신 한 번을 보더라도 더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먹히는지는 모르겠네요. 내년이 결혼 20주년이라 아내에게 뭔가 하긴 해야 할 텐데…."

-가족들이 야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결혼 당시 부인도 야구를 잘 몰랐다고 하고 아들도 골프 선수잖아요?

"결혼할 때도 그랬지만 아내는 야구에 대해 잘 몰라요. 큰누나 친구의 중매로 만났는데 데이트 두 번 만에 양가 부모님이 따로 만나셔서 결혼을 결정하시곤 우리에게 알리셨어요. 그러니 제가 데리고 다니며 야구에 대해 가르쳐 줄 시간이 있었겠어요? 요사이 전화 통화를 해도 주로 자식,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야구에 대해선 말을 안 해요. 아들(18세)에겐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했더니 골프를 택하더군요. 억지로 강요할 순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시즌은 끝났지만 선 감독은 여전히 바쁘다. 삼성의 마무리 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경산 볼파크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을 텐데 지금 하루 일과가 딱 그렇네요." 말은 편하게 하지만 내년 시즌 구상으로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다. 외국인 투수 2명도 새로 뽑아야 하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일도 챙겨야 한다. 게다가 내년에 지역의 야구 소년들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장학금을 줄 계획인 데다 투수들의 기술 지도도 생각 중이어서 더 신경이 갈 일이 많다. 내년은 선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다. 재임 5년 동안 세 번 우승을 달성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다니 내년 목표는 우승으로 잡을 것 같다. 현재 삼성의 가장 큰 약점은 선발 투수진. 안팎으로 선발 투수감을 찾고 있는 선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선동열은?

1963년생. 광주일고, 고려대를 나와 1985년 고향팀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에 첫 발을 디뎠다. 1989∼1991시즌 3년 연속 투수 4관왕(평균자책점·다승·탈삼진·승률)에 오르고 1986·1987년과 1993년에는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국내 최고의 투수로 마운드에 군림했다. 국내 프로야구 11년 통산 기록은 146승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1996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4년간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리며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뒤 은퇴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된 첫 해(2005년)와 이듬해 등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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