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밥 딜런과 은유의 힘

최근 들어 가수 밥 딜런을 소재로 한 영화 2편을 보았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와 일본 아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라는 영화다.

밥 딜런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반전(反戰) 저항 운동의 상징이자 음유시인이다. 그의 노래는 시대를 은유하는 성찰적인 가사로 이름 높다.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는 흥미롭게도 밥 딜런이 나오지 않는 밥 딜런의 전기 영화다. 이 영화에는 7명의 인물이 나온다.

음악적 변신으로 비난받는 뮤지션 쥬드(케이트 블란챗), 저항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크리스찬 베일), 회심한 가스펠 가수 존(크리스찬 베일), 은퇴한 총잡이 빌리(리처드 기어), 시인 아서(벤 위쇼), 배우 로비(히스 레저), 어린 흑인 뮤지션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 이들은 모두 밥 딜런의 7개의 서로 다른 자아다.

한때 가스펠에 심취했고, 총잡이에 매료됐으며, 시인 랭보를 좋아했던 그의 파편적인 자아들이 모두 모여 거대한 밥 딜런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케이트 블란챗은 이 영화에서 밥 딜런과 흡사한 외모로 나오는 여자 배우다. 흑인에 여성까지 밥 딜런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을 7개의 자아로 생동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One more cup of coffee' 등 밥 딜런의 명곡들이 전편에 걸쳐 흐른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일본 센다이를 배경으로 일본인과 외지인의 소통과 갈등을 집오리와 들오리에 빗대고, 이를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가 아우르는 영화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지나가야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어질까/ 친구, 그 해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어/ 바람만이 그 해답을 알고 있지.'

밥 딜런 노래의 가사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적 은유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도 그렇다. 노래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다. 이 가사가 최근 미국 연방 대법원 판결문에 인용돼 화제를 모았다. 통신사업자들 간 소송에서 "피고가 이익을 취한 것이 없어, 원고에게 물어줄 것도 없다"는 의미로 이 가사를 끌어 썼다.

1981년 캘리포니아 법원에서는 전문가의 증언이 필요한가라는 논란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기 위해, 일기예보 아나운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역시 딜런의 노래 '지하실에서 젖는 향수'(Subterranean Homesick Blues)에 나오는 가사다.

밥 딜런의 노래는 이제까지 26회로 미 법원 판결에 가장 많이 인용됐다고 한다. 그만큼 가사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인 삶이 풍부해지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은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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