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늘 국어' 경북여고 배광호 교사

학생이 강단서 수업 진행…열공 분위기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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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국어' 수업을 하는 경북여고 배광호 교사. 그의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경북여고 배광호(50) 교사의 국어수업은 일반적인 수업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하늘 국어'라 이름붙여진 이 수업은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강단에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교사는 단순히 보조자이자 조언자일 뿐, 수업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학생이다.

수업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 전 시간에 학생들은 다음 시간에 공부할 교과서 내용을 간단히 소개받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A4용지 한 장 정도에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나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지 등을 관찰해 적어온다. 수업 시간이 되면 두 명 정도의 학생이 차례로 10분쯤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발표한다. 다른 학생들은 내용을 들은 뒤 이견이 있는 부분이나 반론을 제기하고 발표자는 다시 그 부분에 대해 답변하는 등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사는 수업 내내 학생들의 의견을 메모해두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답변을 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한다.

배 교사는 12년 전쯤부터 이런 식의 수업을 해왔다. "공고 교사로 지낼 때 항상 느낀 게 학생들의 동기 유발이 어려워 수업 진행이 힘들었다는 것이었죠. 뭔가 학생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죠."

지금의 '틀'을 갖춘 것은 대구외고에 부임해서부터였다. "중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한 학생이 외고에 입학하고 난 뒤 거의 꼴찌를 했었죠. 충격을 받은 학생은 자살까지 시도하려고 했죠." 그 사건으로 배 교사는 지식을 쌓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자제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전까지의 수업이 지식 전달에 초첨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의 수업 방식은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표현하도록 하는 것. 매번 수업 후에 학생들에게 수업 소감을 쓰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춘향뎐'을 예로 들어보죠. 춘향이나 이도령의 행동들과 주제 등을 관찰해오라고 하면 모순점이나 한계 등을 정리해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자신은 원래 남녀평등주의자라 생각했는데 막상 관찰해보니까 남성우월주의였다는 걸 깨달았다는 학생들도 있고요. 이렇게 수업을 통해 자신을 깨달아갈 수 있는 거죠."

그는 발표할 학생들의 명단을 만들어 1학기가 지나면 전 학생이 한 차례씩 모두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수행평가에도 반영한다.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자 학생들의 지루해하는 모습이 싹 없어졌다. 오히려 수업이 재미있어 국어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한단다.

가끔 뜻하지 않은 문제도 발생한다. 순서가 돌아온 학생들이 준비를 해오지 않았을 때다. 그럴 때를 대비해 배 교사는 평소에 여러 가지 특강 자료를 모아놓는다. "초창기엔 그런 경우가 발생해 정말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러면 수업 진행을 못하고 그냥 자습시키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공부나 의사소통, 시간활용법, 오답노트 정리법 등 다양한 특강을 하고 있어요."

수업 방식이 흥미롭지만 과연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적합할까. 그도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배 교사는 이런 수업 방식이 오히려 수능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수능에선 사고력을 평가하죠. 그냥 단순히 참고서를 외워서 답을 적는 것보다 스스로 모르는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더 적합한 것이죠. 글을 쓰면서 자기 평가를 할 수 있고 글 쓰는 능력도 자연스레 길러지죠. 초반엔 2, 3줄도 쓰기 힘들다는 학생들이 한 학기가 지나면 A4 용지 한 페이지 가량을 모두 메울 수 있죠."

배 교사는 이런 수업 방식이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하려면 교사들 손이 더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사명감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봐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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