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군, 내일모레가 수학능력평가 시험일이네. 지금 자네의 기분을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점이지. 먼저 꼬박 7개월을 앞만 보고 달려 온 L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수고로움에 대한 답을 하겠네.
꽃샘추위가 다소 누그러질 무렵, 자네는 '재수생'이 되겠다고 했지. 가족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했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과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전문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데 굳이 힘들게 다시 수능 공부를 하느냐고. 어쩌면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걸로 비쳐질 수도 있었어.
L군, 재수를 하는 목적을 이렇게 말했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고교 3년이 아쉽고,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요."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는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준비하는 시간 동안 자네가 지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지.
어느 날 새벽, 내가 자네에게 "어제 이 시간과 오늘 이 시간 우리 코끝에 와닿는 공기의 느낌이 다르지. 학원차 오는 곳까지 날마다 함께하는 시간들을 잊지 못할 거야. 멋진 추억이 될 거야. 그지?" 그랬더니 자네는 아주 짧게 반문했어. "추억이라고요?" 그 대답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네. 고단함이 잔뜩 배어 있다는 걸 느꼈어. 그것을 헤아려주지 못한 나를 자책했지.
성실한 L군, 그렇다네. 자넨 아주 성실한 재수생이었어. 지난 6월 17일자 '학부모 생각'에 '서둘다 보면…'이란 제목으로 자네에 관한 글을 썼었지. 자네의 학습계획표 하단에 '꼼꼼하게, 천천히, 단단하게'라고 쓴 글귀를 소개했었잖은가. 자넨 그 약속을 실행했어. 나는 학습계획표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네. 괄호 안에 완결 표시만 봐도 배가 불렀으니.
그저께 자네를 배웅하면서 이렇게 물어봤지. "재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게 뭐지?" 자네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어. "재수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성공한 것으로 보죠. 가장 힘들었던 건 체력이 점점 약해질 때였어요. 얻은 건 제가 무한한 끈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었죠."
'무한한 끈기',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 L군 자네가 그것을 습득했으니 7개월의 시간은 아주 값진 것이었어. 미국 역사상 흑백의 장벽이 무너지게 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이것이 토대가 되었다고 보네.
사랑하는 L군, 인내의 열매는 달다고 했으니 이제 초연한 마음가짐으로 수능 시험에 임하게. 자네의 건승을 비네. 파이팅!
장남희(구암고 졸업생 임준현 어머니)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