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수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 장성급 북측 대표단장인 김영철 중장 일행이 지난 6일 개성공단을 둘러보고 공단 폐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정치뿐 아니라 남북 관계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덩달아 공단 입주기업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지난달 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 삐라 살포를 문제 삼으며 남북 관계의 전면차단을 경고한 터이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리근 미주국장은 뉴욕을 방문해 오바마 진영의 한반도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와 만나 적극적인 관계개선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이 같은 대조적인 풍경은 미국과 通(통)하고, 남한은 배제한다는 이른바 '通美封南'(통미봉남)의 초기 징후로 비칠 만하다. 마치 10년 전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불화를 상징하는 김영삼 정부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야당은 현 이명박 정부의 다소 경직된 대북 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기존 정책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진할 것이고 대남 관계는 소홀하게 다룰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를 개성공단 폐쇄 조치와 같은 남북 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남북 간의 과도한 긴장 조성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0월 11일 조지 부시 행정부를 상대해 정권의 숙원이었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삭제하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경제건설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 협력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개성공단의 일방적인 폐쇄는 이런 경제적 기대효과를 포기하는 조치와 다름없다. 이는 북한의 대외신용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쳐 외자유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언행은 자제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오바마 당선인의 입장에서도 일방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관계를 진전시키려면 적지 않은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당분간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는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안보 및 경제동맹 강화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과 북한 모두 한국 배제는 실리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 포기 진전에는 경제적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부담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상당 부문 한국이 떠맡게 될 것이다. 과거 북한 핵 개발 동결을 대가로 지원하기로 약속한 경수로 건설 때와는 달리 남한 내 보수화된 정치환경은 정부가 북미협상에서 배제된 채 경제적 보상만 제공하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통미봉남은 일시적인 압박의 수단으로 유용성이 있을지 모르나, 현명한 전략은 아니다. 이는 북한 지도부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전보다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남북한 당국 모두 꽉 막힌 남북 관계를 뚫을 수 있는 돌파구를 당분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남북 관계가 조금 뒤처지더라도 북미 관계가 앞서가도록 지원하는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 북미 관계 개선은 핵 문제 해결과 개혁·개방의 진전을 촉진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안정적인 남북 관계 진전과 통합을 뒷받침하는 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을출 연구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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