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기에 더 떨리는 '감원 삭풍'…구조조정 바람 예고

대구 모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A(34·여)씨는 요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몇달 동안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조만간 강력한 인력감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병원 내에 떠돌고 있기 때문. A씨는 "제일 먼저 간호사 수를 줄일 거라는 소문인데, 조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며 "요즘은 병원 경기가 워낙 좋질 않아 마땅히 이직자리를 찾기도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금융권에서 시작된 경기침체의 여파가 실물경기로 옮겨오면서 사회 곳곳에서 '구조조정' '희망퇴직'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돌고 있다. 아직까지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IMF 시절 매서운 칼바람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혹시 내가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며 가슴 졸이고 있다. 이미 하나증권·농협·신한·외환은행 등의 금융권에서는 조직 축소에 돌입했고, 금호타이어·쌍용차 등 대기업에서도 희망퇴직과 무급휴직 실시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이런 분위기가 중소기업까지 줄줄이 영향을 주지나 않을지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B(52)씨는 최근 보훈청에 직업보호대상자로 등록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조만간 구조조정이 시작된다는 소문이 떠돌자 국가유공자의 자녀인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없는가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보훈청 측은 "직업보호대상자는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일 뿐, 국가유공자 가족이라고 해서 구조조정 대상으로부터 제외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구조조정의 칼날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겨누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유급 휴직을 실시하면서 대상자 350명 전원을 비정규직만으로 했다가 비정규직노조의 반발을 샀다. 대구의 한 병원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가장 먼저 비정규직 재계약을 중단키로 했다. 이 병원 노조지부장은 "올해 벌써 2차례의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올 연말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은행권은 아예 찬물을 뒤집어쓴 분위기다. 한 은행 간부는 아예 자진해 일선 근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위치에서 마음 고생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업을 맡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IMF 10년 만에 또다시 이런 사태가 닥칠 줄 상상도 못했다"고 답답해했다.

공단지역에도 경기 침체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거리가 없어 오전에만 일을 하거나 수개월 월급을 받지 못해도 '공장이 문을 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대구 북구 3공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요즘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가슴답답한 사정만 늘어놓고 있다"며 "대구 경기가 나아진 적은 별로 없지만 이렇게까지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IMF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달 말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 경기 불황으로 중소기업의 32.7%가 '현재 구조조정 중'이라고 답했으며, 그 방식으로는 ▷'부서 통폐합에 따른 감원'(51.8%) ▷비정규직 감원(24.1%) ▷정리해고(14.5%) ▷명예퇴직권고(6.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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