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대구 동대구역 대합실. 하루 수만명이 오가는 가운데 노숙인 7, 8명이 대합실 여기저기서 차가운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 단출한 짐 때문에 얼핏 허름한 차림의 여행객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노숙인들이다. 이들 중에는 깔끔한 차림의 노숙인들도 눈에 띈다. 그중에는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얼굴이 하나둘씩 발견됐다. 고속버스터미널 옆 광장에서 만난 한 50대 노숙인은 "젊은애들이 2, 3일쯤 안 보이는가 싶다가도 무료급식 줄에서 또 만나곤 한다"며 "젊은애들이 저러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다"고 고개를 저었다.
청년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기불황에 이은 노동시장 붕괴로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가 지난 7월 조사한 '거리 노숙인' 실태에 따르면 청년 노숙인이 많아지는 추세다. 센터 측에 따르면 대구의 전체 노숙인 232명 중 28.4%인 57명이 30대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6년 이후인 최근 3년 새 청년 노숙인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표)
그러나 청년 노숙인들은 대부분 노출을 꺼리는데다 찜질방, 만화방, PC방에 기거하고 있어 이들까지 '잠재적 노숙인'으로 분류할 경우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현시웅 소장은 "노숙인과 일용직 근로자, 쪽방거주자들 사이에 차이는 크지 않다"며 "일자리가 있어 돈이 생기면 쪽방이나 임시거처로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오후 두류공원 인근에서 어렵게 만난 한 30대 청년 노숙인은 "여기도 못 끼고 저기도 못 낀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무료급식을 먹으려고 하면 노인들 일색이라 쳐다보는 눈길이 따갑고 잠을 잘 때는 40, 50대가 주류(?)인 지하철 역사의 모퉁이를 찾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공사판에서 일주일 정도만 일하면 겨울을 쪽방에서 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다.
청년 노숙인들은 일자리만 주어지면 거리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숙탈피 의지'에 대해 163명(81.1%)이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을 했고, 이중 125명이 '일자리 마련을 통해'라고 답했다. 또 '현재 가장 시급하다고 여기는 문제'에 대해 '생활할 곳 필요'에 81명, '일자리 확보'에 74명으로 나타나 안정된 거주지 못지 않게 일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가 끊기면서 구조적 노숙인이 배출되는 현실은 냉엄하기만 하다.
대구의 한 건설 용역회사 관계자는 "건축 경기가 아예 없어 고정적으로 일자리를 갖고 있는 이들도 쉬는 판"이라며 "새로 일하려는 사람들 사이에도 경쟁이 치열해 일용직이 대부분인 노숙인들에게까지 일자리가 주어질지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