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대사다. 자폐장애를 가진 청년이 그 어머니의 헌신에 힘입어 장애를 이기고 서브3로 마라톤 완주에 성공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2005년 1월에 개봉되었는데 이후 540만명이 넘는 관객을 그러모아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대종상에서 무려 7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에 있어서도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았다.
자폐장애를 가진 주인공 초원이의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조승우는 이 영화 한편을 통해 거의 무명에 가까운 뮤지컬 배우에서 일약 대중적인 스타가 되었고, 여러 가지 뒷얘기와 수많은 화제를 불러왔다. 아울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도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온갖 매체의 표적이 되어 그의 일상생활과 그 어머니의 고난어린 헌신을 앞다퉈 소개했다. 자폐장애로 대표되는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크게 높아지는 듯했다. 급기야 이런 들뜬 분위기에 힘입어 그해 여름 발달장애 전문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말아톤 복지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는 듯했다.
그랬던 배형진씨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우연히 모 방송국의 '네버엔딩스토리'라는 인물추적 프로그램에서 최근 그의 새로운 모습을 담아 방영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TV가 없는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그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천사와 같은 그의 천진한 모습과 그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한결같은 모습이어서 참 반갑고 감동적이었지만 그 뒷맛은 참 씁쓸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자폐로 대표되는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을 위한 배려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자폐증을 앓고 있는'이라는 표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자폐는 병이 아니라 장애이므로 '앓고 있다'는 표현과 '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지적인 수준이 병과 장애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낮지는 않을 터인데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 TV 방송에서조차 아직도 병과 장애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참 실망스러웠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더 나아가서 그 혹독한 철인3종 경기까지 완주하여 인간승리의 표상처럼 소개되던 그가 지금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는 것은 참 뜻밖의 일이었다.
영화가 화제가 된 이후 그는 쇄도하는 인터뷰와 매체의 지나친 관심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여서 머리털이 빠지고 경기까지 일으키는 지경에 빠졌었다고 했다. 이후 한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 고용사업장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적응에 실패를 하여 그만두었고 지금은 히말라야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등반의 영웅 엄홍길씨와 함께 벌써 백두산도 다녀왔고 지금은 암벽등반을 훈련하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참 좋은 의미로 느껴진다. 새로운 희망과 불굴의 의지로 이루는 새로운 성취를 기대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배형진씨의 새로운 도전은 왠지 자꾸만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왜 자꾸만 마라톤에서 철인3종 경기에 이어 히말라야 등정까지 도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또한 그가 이제껏 이루어온 마라톤과 철인3종의 완주와 지금 막 시작한 히말라야 등정의 성공이 과연 그의 삶을 더 가치있게 하는 것인지, 그 도전이 그의 삶을 온전하게 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는지 참 고민스러웠다.
이제껏의 도전이 자신의 바람에 의한 선택이었다면 이는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간에 참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무감각한 이웃과 사회의 시선을 끌어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에게 더욱 혹독한 도전과 극복을 우리가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하지 않더라도 그가 우리의 일상 속에 충분한 배려를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될 수는 없는 것인지….
이상만(돋움공동체 대표'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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