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김익순이 반란군에 항복하고 반란군이 내리는 벼슬을 받았다. 반란이 진압되고 김익순은 관군에 붙잡혀 능지처참됐다. 김병연(김삿갓)은 백일장에서 선천부사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로 장원한 뒤 그가 할아버지임을 알았다. 그는 깊은 자괴감에 빠져 일생을 삿갓 쓰고 시 읊으며 떠돌았다.
'역적의 자손이니 불충이요, 할아버지를 하늘에도 들지 못할 죄인으로 욕했으니 불효라, 스스로 천지간에 용납받지 못할 죄인을 자처하며 두 번 다시 햇볕 아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관련해 알려진 설화다. 그러나 이문열의 장편소설 '시인'은 김병연이 일찍이 할아버지 김익순의 죄목을 알았고, 자신이 역적 집안 자손임을 알고도 백일장에 응시한 것으로 본다.
시골 백일장에서 '가산 군수 정시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우러러 노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름을 굽어 한탄하라'는 시제를 받았을 때 김병연은 고뇌한다. 그는 필낭을 수습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양반집 며느리에서 이제는 삯바느질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어머니의 울먹임 섞인 당부가 귓가에 쟁쟁하게 살아났다.
'이제 집안을 다시 일으킬 사람은 너뿐이다.'
김병연은 고뇌했고 결국 할아버지 김익순을 탄하는 시를 썼다. 발표를 기다리던 중 먼저 장원 발표명단을 보고 돌아오던 한 선비가 김병연이라는 선비가 장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덧붙여 '정말 잘 쓴 공령시더구먼. 칼이 아무리 잘 들어도 죽은 사람을 또 못 죽이는 법이지. 그런데 그 시는 죽은 역적의 염통을 또 한번 도려냈어. 그 역적에게 자손이 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꼬…'라고 했다.
설화대로라면 김병연은 이때 바로 삿갓을 쓰고 떠나야 한다. 그러나 소설 '시인'은 김병연이 세상을 떠돈 때를 훨씬 뒤로 본다. 이는 단순히 시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문열의 소설 '시인'은 김병연이 삿갓 쓰고 세상을 떠돈 이유를 설화와 다르게 본다는 말이다.
설화는 '불충과 불효를 동시에 저지른 김병연이 낯부끄러운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삿갓을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문열의 소설 '시인'은 '김병연의 삿갓은 따가운 햇볕과 차가운 빗방울을 가리기 위해, 삿갓 그 자체의 쓰임을 위해 삿갓을 썼다'고 보고 있다. (소설은 꼭 그렇게 대놓고 표현하지 않지만, 그렇게 읽어야 한다.)
설화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이문열의 소설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체제복귀 욕망, 체제의 징계는 김병연이 방랑시인이 되는 단초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김병연이 평생 삿갓 쓰고 방랑하는 시인이 됐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삶을 너무 간단히 본 것이다. 김병연이 다만 '죄지은 신하, 죄지은 자손의 부끄러운 낯을 가리려 했다'면 삿갓 아래로 숨을 게 아니라 형 병하처럼 장돌뱅이로, 농투성이로 세상 아래로 숨었을 것이다. 김병연은 오히려 동시대는 물론이고 2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세상에 드러나는 삶을 살았다.
김병연이 방랑시인의 삶을 살았던 진짜(혹은 더 큰 이유)는 타고난 '피'였다. 그는 일상인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었다. (그는 소나무 아래에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익균(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 그가 '저 꽃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바위벽에서 비로소 꽃이 피었다. 그가 '저 구름이 참 유유하구나'라고 했을 때 비로소 무덤덤하던 하늘에 잘 생긴 구름이 흘러갔다. -소설 '시인' 중에서-) 없던 꽃과 구름이 생겨난 게 아니다. 일상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김병연을 통해 보이는 것이다. 소나무 아래 앉아있는 김병연이 아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과 하나된 시인이었다. 그러니 김병연에게는 임금의 신하, 할아버지의 손자, 아내의 남편, 자식의 아버지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남편으로 일상에 머물 수 없었고 떠도는 시인이 됐다.
불충과 불효를 동시에 저지른 김병연은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그가 삿갓 쓰고 평생 떠돈 것은 모든 관계로부터 '실종'되고 싶은 바람에서 기인한다. 삿갓은 아버지와 남편의 책임을 가려주는 가리개였다. 그러나 종내에 그의 삿갓은 오직 따가운 햇볕과 차가운 빗방울을 가리는 삿갓 그 자체였을 뿐이다. 그는 자연의 일부였기에 사람의 질서에 들어와 앉는 대신 자연 속을 떠다녔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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