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요즘 들어 카스트라토들의/ 카운터테너 노래를 좋아하고/ 나는 안드레아스 숄의 가성(假聲)을 들으며 면도를 하다/ 턱을 베였다./ 어제 중부 지방엔 삼십이 년 만의 큰 눈이 내렸다./ 아파트의 시큰둥한 나무들이 모두/ 꽃보다도 깨끗하고 빛나는 눈꽃을 피웠다./ 안드레아스 숄의 노래도 빛난다./ 그러나 아직은 내 성대(聲帶) 속에 남아 있는/ 저 걸쭉한 성(性)의 어둠을 다 부셔낼 수는 없다./어둑한 마음속에 불끈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올려보며/ 한번 부르르 몸을 떤다."
좋은 책을 만난 날은 가슴이 뛴다. 이 시집이 그랬다.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오후, 시인의 시집은 떨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인은 그의 시에서 변성기 전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소년들의 성을 거세한 중세의 남성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와 훈련을 통해 카스트라토를 대신하는 현대의 카운터테너를 통해 인간의 절대적인 성(性)은 가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한다. 신이 부여한 성과 인간이 선택한 성, 동안(童顔)의 안드레아스 숄이 부르는 '백합처럼 하얀'이란 노래에는 어쩌면 그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심어 놓았을지도 모를 카스트라토의 슬픈 운명이 묻어난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120쪽/5천원
"산 자와 죽은 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는 생명의 순환과 우주의 질서를 보여준다. 천오백 년 전 거대 고분의 주인공들인 신라인의 기상, 자유로움과 미에 대한 찬사,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올곧은 충정, 바위마다 부처를 새긴 종교심 누구나 마음을 연다면 감동은 경주 여기저기 널려 있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것이 토기요 기와 조각이라 할 만큼 땅속까지 문화재로 차 있는 고도다. 근원적인 보여주는 능이 있기에 고도의 풍경은 아름답다. 능들이 펼쳐진 경주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근원적인 것을 찾아 떠나는, 나 자신에게로의 회귀이다."
『강석경의 경주산책』강석경 지음/ 열림원 펴냄/136쪽/9천원
언젠가 TV에서 강석경은 경주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표현처럼 천년고도의 아름다움은 마치 전람회를 감상하는 관람객의 마음처럼 매 순간 절절하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새로움으로 또는 아득함으로 다가오는 고도는 둥근 능을 닮은 바다와 그 파도마저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싸는 따뜻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작가가 '진정한 여행이란 습(習)으로부터의 떠남이고 나는 인도에서 나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고 말한 『인도기행』과 『능으로 가는 길』의 연작에 가깝다. 언제나 허기진 도시의 삶에서 만나는 경쟁과 욕망은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된다. 나이가 들어 가장 살고 싶은 곳이라던 친구의 말처럼 회귀본능을 자극하는 흑백 풍경 속으로 깊은 가을과 함께 들어가고 싶은 간절함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전태흥 여행작가 (주)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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