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활동 공간이 줄어드네요. 이러다 제 몸 속에 제가 갇히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루게릭병 진단 6개월만에 유상대(39)씨는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집 안에는 쑥향이 가득했다. 침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두툼한 약봉지가 있고, 식탁 위에는 흑마늘즙, 홍삼즙이 든 팩이 널려 있었다. 온갖 처방을 다 써본 흔적이 역력했다.
"젊은 사람이 맥도 못추고 당하고만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요. 부질없는 짓이지만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칩니다."
쑥향을 피운 것도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이른바 '카더라'식의 처방에 따른 것이다.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은 병의 진행을 막거나 호전시키는 특별한 방법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가락에 쥐가 났는데 혈액순환이 안돼 그런 줄로만 알았다. 손으로 주물러 발가락을 풀기 여러번. 지난 해 10월부터였을거다. 한 달에 두어번 정도 그러던 것이 12월이 되자 사나흘에 한 번꼴로 찾아왔다. 한의원에 갔더니 침을 맞으면 낫는다고 했다. 두통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처럼 발가락의 경련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2개월 가량 침을 맞았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동네 의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역정을 냈다. 늦었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2월 중순 찾은 파티마병원에서는 '루게릭병'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어쩌란 말인가. 내 나이 서른아홉. 열한 살짜리 아들 녀석은 어쩌고'
서울의 유명한 병원을 찾았다. '설마… 아닐거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친의 얼굴이 스쳤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은 더 또렷해진다는 거였다. 차라리 시름시름 앓기라도 하지. 한없이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움직이려 애썼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기도 여러번. 하지만 길지 못했다. 2개월만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바깥 출입을 삼가기 시작했다. 길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 채 '젊은 사람이 거리에서 뭐하는 짓이냐'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달이 바뀔 때마다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오래 살아야 2년 정도'라는 의사의 말이 조금씩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달부터는 화장실 출입도 두려워졌다. 애를 쓰면 갈 수는 있겠지만 넘어지기라도 하면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예순 여덟의 모친에게도, 아들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만한 힘이 없다. 다음 달에는 또 뭘 못하게 될까. 마음 같아선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몹쓸 병이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몹쓸 병이 찾아왔을까.'
유씨도 불과 8개월 전까지는 사고난 자동차의 도색을 담당하는 14년차 자동차 도장공이었다. 23살때부터 시작한 일이라 숙련공으로 그럭저럭 살림도 꾸릴 수 있었다. 움직임이 많았던 유씨였기에 아들 민석(가명·11)이는 누워만 있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는다.
2003년 민석의 생모와 이혼하면서 어린 민석이를 키워온 유씨는 고작 열살을 넘긴 아들이 애어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 루게릭병이 뭔지 모르지만 치료를 받으면 다시 아빠와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아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루게릭병에 걸린 사람들은 오래들 못 산다더군요. 나중에는 눈으로 대화를 해야 할 정도까지 간다는데… 아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그 전에 현대의학이 해결책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겠죠."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먼저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유씨와 함께 있는 동안 기자의 코끝을 찌르는 쑥향은 점점 짙어갔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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