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감사를 즐길줄 아는 훈련

모발이식 수술장면은 때때로 여학교 시절 자수(刺繡)를 한 땀 한 땀 놓던 추억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 시절 은사님은 망아지같은 철부지 10대 소녀, 우리들에게 신사임당이 되길 바라셨는지 방학과제로 4폭의 동양자수 병풍을 만들라 하셨다.

병풍의 밑그림은 낚시 하는 강태공, 낙엽 지는 가을 산, 백화가 만발한 봄의 정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겨울 설산으로 구성하고 동양화가 그러하듯 선과 면을 중요시 하여 밑그림대로 윤곽과 선을 몇 땀 뜬 후 지루하게 공간, 면을 메우는 작업을 해나갔다.

긴긴 겨울밤을 며칠 새운 후 완성하긴 했으나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그해 방학 이후부터 근시안경을 쓰게 된 것 같다. 모발이식도 윤곽을 정한 후 한 가닥 한 가닥 면을 메워간다. 천 대신 피부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정교하고 정확해야 하며, 전체적으로 조화와 구도가 맞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지루 할 수 있는 반복적인 노동집약작업이라는 점은 공통점이다.

작업장 분위기도 모발이식의 경우 수술 위험도가 낮은 터라 수술실 특유의 긴장감보다는 친밀감과 느슨함이 감도는 예술 작업장 같아 수작업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50대 중년의 남자. 대머리라서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피부나 표정은 어린 아이처럼 맑고 투명하다. 4~5시간 수술하는 동안 지루하고 힘들었을법도 한데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수술도중 간호사가 머리 받침대를 교정하는 조그만 친절에도, 비뚤어진 이불 덮어주는 작은 행위에도, 심지어 수술 시야확보를 위해 수술대 위치를 조정하는데도 "감사"를 외친다. 아마도 이 분의 티없이 맑은 표정과 편안한 분위기가 이 '감사'에서 오는가 싶었다.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율신경이 있다. 교감신경은 주로 불안'초조'시기'질투'놀람'분노'욕심'미워하는 마음 등이 있을 때 강하게 작용한다. 교감신경이 작동하면 심장이 급하게 뛰고 소화불량 등 내장기관에 여러가지 병이 생긴다. 만병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는 말이 충분히 의학적 근거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부교감신경은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남을 귀히 여기는 마음 등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부교감신경이 지속적으로 자극돼야 건강해진다. 활기차고 담백하게 살려면 사소한 감사를 많이 발굴해내고 감사를 즐길줄 아는 기술을 훈련해야 할 것 같다.

넬슨 만델라가 무려 27년동안 감옥생활을 한 후에도 너무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취재하러 온 기자가 이 비결을 물으니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감사'였다.

"나는 감옥에서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 설정된 감옥에서 너무나 초라하게 먹고 마시면서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지는 하늘과 땅에 감사한 넬슨 만델라의 내면의 위대함을 우리도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실천해볼 일이다. 특히 감사하기 넉넉한 이 가을에….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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