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진 조작

2차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이탈리아 연합군이 영국군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점령지인 리비아의 트리폴리에 도착해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말 위에서 회교도가 선물한 칼을 높이 쳐들고 있는 사진이었으나 배포된 사진은 달랐다. 원본에는 말고삐를 쥐고 있는 관리자가 있었으나 지워진 것이다. 위대한 수령이 하찮은 말 관리자의 도움 따위를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히틀러 집권 당시 체제 내 모든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하인리히 호프만은 1932년 히틀러에 관한 최초의 사진집 '히틀러의 숨겨진 면모'를 발간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훗날 이 사진집을 회수하고 재판도 찍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진집에 실린 유아 시절의 히틀러, 눈을 부상당한 히틀러 상병, 반바지를 입은 모습 등은 세계를 진동시킨 국가원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진 조작은 대개 교묘하게 이뤄지지만 조작을 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1976년 9월 18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마오쩌둥 추도식에는 문화혁명을 주도한 장칭(江靑) 등 '4인방'을 포함, 20여 명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참석했다. 이 장면은 중국과 외국의 모든 신문 잡지에 게재됐다. 그러나 4인방이 실각한 뒤 11월 이후 공개된 사진은 4인방이 지워지고 그들이 서있던 자리는 뻐끔히 비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지워진 것이다. 이를 두고 '폭정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사진'을 연구해온 프랑스 저널리스트 알랭 주베르는 "우리(권력)가 그들을 어떻게 숙청했는지 보아라. 우리는 그대들도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사진은 발명된 이래 사실 그 자체이며, 의심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독재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작을 통해 독재자의 전력을 과장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기능한 것이 사진이었다.

북한이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조작 의심을 받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와 BBC인터넷판 등이 합성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사실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계속되는 '사진통치'는 김 위원장의 신변이 정상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훗날 원본이 공개된다면 독재권력에 의한 또 하나의 사진 조작 사례가 추가될 것이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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