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자녀의 '꿈'을 위해 기도하자

해마다 되풀이 되는 전국민적 행사 하나가 오늘 있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다. 이 날을 앞두고 오래전부터 전국의 사찰과 교회·성당에서는 왼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는 물론이고 친척·지인들까지 기도 부조를 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았다.

전국적인 수능 기도 명소로 알려진 팔공산 갓바위 역시 올해도 예외없이 전국서 몰려든 기도 인파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立冬(입동)을 지난 차가운 날씨도 아랑곳 없이 끝없이 두 손을 모으며 기원하는 모습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면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수능 풍속도다. 어쩌면 전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풍경 아닐는지….

오늘이 지나가도 부모들의 기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논술시험 고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새벽기도회에 나갈 것이고, 겨울바람 몰아치는 산정을 향해 땀 흘리며 올라갈 것이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그들은 과연 자식의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수능 고득점? 일류대학 합격? 부모라면 당연히 기원할만한 제목들이다. 누군들 소망하지 않으랴. 하지만 단지 이것 뿐이라면 어쩐지 허허롭다는 생각이 든다. 수능에서의 높은 점수 그리고 바라는 대학 합격 외에 자녀를 위해 기원해야 할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고 있지 않나 싶다. 바로 자녀들의 꿈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자녀들이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알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성실히 키워갈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는 일 말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꾼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을 생각해 본다. 흑백 혼혈에다 부모의 이혼, 외조부모에 의한 양육 그는 한마디로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유색 인종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가 지난한 미국 사회에서 그가 차지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어보였을만 하다. 그러나 오바마는 어릴적부터 대통령을 향한 옹골찬 꿈을 키웠다. 주변 사람들은 코웃음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가슴 속에 심은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노력했다. 연방 상원의원 진출 2년차인 신출내기가 쟁쟁한 정객들을 누르고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꿈은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흑인 소년소녀와 백인 소년소녀가 팔짱을 끼고 형제자매처럼 걷는 그날이 오리라"던 45년전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꿈도 함께 실현시킨 순간이었다.

물론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꿈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꿈인가다.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순위는 다름아닌 '연예인'이라고 한다. 화려한 스타가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면서 학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연예인의 뒤를 이어 '운동선수', '부자'가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앞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란한 조명, 박수갈채, 물질적 부가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다면 지나칠까.

최근 한국투명성기구가 전국 중고교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설문조사 결과는 우리를 당혹케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대상 청소년의 18%가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받게 된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한 대목이다. 당장 10억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까짓 10년쯤 감옥에서 썩은들 뭐 대수랴는거다. 나라를 뒤흔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몇년 감방살이후 버젓이 유명 인사로 살아가는 일부 기성세대의 왜곡된 모습을 꼭 닮아 있다. 종이 반쪽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뒤 접었다 펴면 똑같은 그림이 다른 반쪽에 찍히는 데칼코마니를 연상하게 만든다.

중국 춘추시대 齊(제)나라의 명재상 管仲(관중)이 쓴 책으로 알려진 管子(관자)에는 '작은 푸대는 큰 물건을 용납할 수 없고, 짧은 두레박줄은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 없다'고 했다. 짧은 시야로는 결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허황된 꿈 때문에 청소년들이 早老(조로) 현상에 빠지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자신의 미래와 시대를 바라보는 큰 가슴을 갖게끔 浩然之氣(호연지기) 가치관을 다시금 길러줘야 할 때다.

아메리카 인디언 가운데 아라파호족은 11월을 일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 닌 달"로 부른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이처럼 넉넉한 마음그릇을 키워갈 수 있도록 기원해야 하지 않을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