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우의(寓意)로 빚는 세태의 풍자극

안네 까뜨린 벡케르 에쉬바르 전 / 수성아트피아 / ~23

힘든 과정들은 안중에 없고 손쉽게 얻은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현대의 인심은 어디서든 간편한 방편만 쫓게 한다. 상호 간의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사랑의 기쁨마저도 쉽게 알약 하나로 해결해보려는 어리석은 군중의 심리적 풍경화를 그린 우화가 있다. 이런 세태를 풍자하는 한 프랑스 여성작가의 사진전에서, 'Happy Love Pills'란 제목의 작품은 공장에서 사랑의 묘약을 생산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효능이 7분짜리에서 일주일짜리까지 여러 종류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포에버(forever) 용을 생산하려는 라인에서 그만 과부하가 걸려 시스템이 파열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무한대로 지속되는 효능이 무리였던지 아니면 평생 가는 사랑이라는 기획이 좀 지나쳤던가 보다. 이런 약이 요구되고 또 필요로 하는 현실이 그런 상상을 만드는지. 작가는 각종 인간들의 유형화된 성격들을 물고기들의 표정들로 의인화시켜 연기하게 하는 특이한 표현법을 쓴다. 생선의 머리에 인형 옷을 맞춰 입히고 연극무대처럼 꾸민 세트공간을 제작해서 실제의 공간과 상황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원래 알레고리는 단순히 계몽적인 교훈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욱 풍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예술적인 표현수단이다.

작가는 소품을 준비하고 인물 구성과 배경 장치를 마련하고 완벽하게 세팅을 마치면 그 다음 사진으로 촬영하게 되는데, 시나리오 구성과 연출과 장치, 촬영까지의 전 과정을 혼자서 한다. 일의 효율성에서 보면 비경제적인 생산방식이지만, 예술창작의 1인 생산체제의 모델은 (물론 사진의 인화는 외부에 맡기고, 소품 의상들에 필요한 바느질이나 뜨개질은 어머니의 조력을 많이 받는다곤 했지만) 일의 전 과정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장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지혜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감각적인 원형을 일깨운다. 일의 전체를 알 수 없거나 부분적으로만 참여하는 시스템에 적응된 현대인들에게 그런 구조는 점점 더 우리의 감각이나 능력들 간의 담을 쌓고 경계를 만들어 분절된 삶을 사는데 익숙해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가의 창작방식은 삶의 전체성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미니어처 같은 무대 장치들은 섬세한 손길로 꼼꼼하게 마무리된 듯 정교하고, 실물을 모방하거나 직접 차용한 오브제들도 매우 매력적이다. 거기에 배경으로 설정된 상황들이 실제 사진의 합성처럼 느껴질 정도여서 극적인 리얼리티를 높인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 교도소 뒤뜰 담 벽에 기대어 휴식시간을 보내는 수인들의 담소 장면은 그 배경이 실물인지 만든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기계예술로 재현해내는 영상 미학뿐만 아니라 뚜렷한 사회적 관심의 반영이 드러나는 익살스러운 접근법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감각적인 재치가 더욱 돋보인다. 기술의 진보성과 전문 능력들 간의 통합, 그리고 풍자적인 내용에 들어있는 비판적 시각도 주목을 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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