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정보화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라고들 한다. 정보통신의 잠재력을 과대평가하는 일부 학자들은 이미지의 혁명이나 정보통신의 유토피아를 예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체의 풍요에 의한 이미지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가치전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점점 가속화되어가는 정보의 홍수와 이미지의 범람은 비단 정보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지각방식까지도 수정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가상과 실재, 형상과 이념 사이의 층위를 전도시키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급속히 발달되어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를 비롯해서 만화, 션, 잡지, 신문이 날마다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산출해내고, 도시에는 광고와 네온사인의 표지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범람은 이제 우리의 일상적 현실의 환경이 되고 있다. 오늘날은 이미지를 만들고 유포하는 쪽에서나 그것을 수용하는 쪽에서나 근원형상에 대한 암시나 실체와의 유비관계에 대한 사고의 깊이는 없고 다만 즉물적이고 피상적인 '보이기'와 '보기'에 급급할 따름이다. 이제는 다양한 볼거리가 '생각하기'를 대체하고 있다. 이미지는 무성하지만 눈과 마음, 형상과 이념이 하나로 집약되고 있질 못하다.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무상한 시공간을 우주로 확대하는 덕목도 상실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적 시간에 침몰된 채, 강렬하게 순간을 살고 자신을 실현하며 일시적인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현대인들은 총체적인 것보다는 부분적인 가치에 민감하고, 미세하고 구체적인 것에 집착하며 무엇에든 신속하게 참여하는 수완을 부리는 데 더 민감하다. 이제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전달되는 사건 앞에서 어떤 기억도 어떤 내면적인 거리도 갖지 않으며 꼼꼼히 따지거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정보 속으로 떠밀려간다. 특히 광고매체의 현란함이 겨냥하는 것은 즉발성이다. 표피적인 감각의 자극에 따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 즉시 갖고 싶어하고, 기다리며 참을성 있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도덕은 폐기처분된 윤리로 여길 뿐이다.
결국 다량의 이미지가 남기는 것은 숙고와 사고의 空洞化(공동화), 즉 자극에 비례하는 즉각적인 반응의 메커니즘일 뿐이다. 더 많은 영상적 정보에 접할수록 '아는 것'이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하는 과정이 표백된 눈요기와 욕구 충족의 말초적 반응만 난무한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무리 세상이 신기루 같은 영상을 좇아 가속화되어가도 여전히 인간의 삶은 그렇게 가벼운 것으로 나풀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일수록 삶과 이념의 무게를 견지하는 일 자체가 자신과의 버거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수단으로 삼는 미술인의 입장에서 이제쯤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진정 자신의 삶의 필연성의 언어로 말을 건네고 있는지, 난무하는 이미지의 껍데기들 속에 부유하며 또 다른 기호들을 양산하고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지의 덫 또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이미지가 이미지를, 언어가 언어를 배반하도록 방관하고 혹은 가세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삶의 언어가 곧 미술의 언어인 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삶의 진정성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코드화된 일상의 덮개를 열고 오늘날 삶의 속살을 헤집어보는 예리한 작가의식과 감수성이 요구된다.
장미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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