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10만장을 모아야 10억원이 된다. 1초에 2장씩 센다고 계산했을 때 13시간55분이 꼬박 걸린다. 지폐 계수기를 이용해 100장 단위로 센다고 해도 1천번을 해야 한다. 행여 한번 틀리기라도 하면 3,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일이다. 그런들 어떠랴? 남의 돈이 아니라 내 돈 10억원이 눈 앞에 있다면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하고라도 세고 또 세어볼 일이다. '동그라미 9개짜리' 금액을 세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시간이면 족하지만 그 돈을 버는 데는 몇십년이 걸려도 부족하다. 뉴스에서 100억, 1천억이라는 숫자가 난무하다 보니 감각이 둔해지긴 했지만 개인에게 10억원이라는 돈의 가치는 엄청나다. 물론 10억원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 그 상대적 가치는 달라지지만.
◆10억원의 가치
포브스코리아가 지난 2006년 일반인 1천명에게 물었을 때 부자 기준에 대한 재산액 평균치는 89억원이었다. 상위 1%가량의 최고 소득 및 재산 보유층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2007년 포브스코리아가 하이페리온, 타워팰리스, 아이파크 등 강남의 고가 아파트 거주자들을 상대로 부자 기준을 물었을 때, 이들이 응답한 부자 기준액의 평균치는 110억원이었다. 이들이 사는 아파트는 20억원 이상이다. 이런 숫자들을 나열하다 보면 자칫 10억원의 가치를 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억원은 결코 만만하게 볼 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내심 목표로 잡는 재산액은 10억원이 보편적이다. 89억원이나 110억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나마 10억원은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기 때문. 하지만 이마저도 결코 쉽지 않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불황에 빠지면서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져, 앉은 자리에서 수천만원 또는 수억원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해졌기 때문. 지난봄 주식시장이 바닥을 쳤다고 판단한 직장인 최모(38)씨는 여윳돈 5천만원을 주식에 '몰빵'했다가 3분의 2를 날렸다. 물론 아직 주식을 팔지 않았으니 손해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 공허함은 상상 이상. 주식·펀드로 돈 모은다는 생각은 일단 접고, 단지 저축만으로 10억원의 가치를 따져보자.
기왕에 공상에 빠진 만큼 인심도 크게 써서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0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이 현재 300만원선임을 감안하면 5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설문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직장인 평균 소득이 270만원일 때 평균 저축액은 76만원이었다. 500만원 소득일 때 매월 200만원을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가구를 꾸려가면서 살인적인 사교육비까지 감당하려면 200만원 저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대한 알뜰하게 산다는 전제 아래 계산해보면 연간 2천400만원을 모을 수 있다. 10년이면 2억4천만원, 40년을 꼬박 모으면 9억6천만원이 된다. 복리 이자를 감안하고, 월소득 증가에 비례해 저축액도 매년 조금씩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30년 정도면 10억 가까이 모을 수 있다. 3시간 남짓 세면 될 돈을 30년 모아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인터넷에는 3개월 만에 16억원을 모으는 방법도 나와있다. 일종의 다단계 금융수법. 1천500명에게 2천원씩 보내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회답률을 2%로 가정하면 30명이 돈을 보내온다는 것. 그 30명이 다시 1천500명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들 중 30명이 다시 돈을 보내오는 방식이 반복되면 4차례만 거치면 81만 명이 2천 원을 보내와서 16억여 원을 받게 된다는 것. 행여 이 방식이 그럴듯해 보인다면 당신은 정말 돈이 궁하거나 판단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일단 회답률은 0.02%도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10억원을 어떻게 쓸까?
10억원은 큰돈이다. 고금리 시대에 은행에 넣어두어도 연리 8%로 따진다면 연간 8천만원이 생긴다.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을 빼더라도 최소 5천만원 이상을 앉아서 벌 수 있다는 뜻. 이런 거액이 눈 앞에 조건 없이 생긴다면 어디에 쓰고 싶어질까?
병원 사무장인 김도형(35)씨는 "집 마련하느라 빌린 1억원을 당장 갚고, 글 쓰기 좋아하는 아내가 책을 하나 썼는데 작은 사무실 한칸을 마련해줘서 마음껏 글도 쓰고 책도 내주고 싶다"고 했다. 남는 돈으로는 세계여행을 떠나고, 그런 중에 현재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는 아이가 볼리비아에 살고 있는데 그 아이를 꼭 만나고 싶으며, 늦깎이 공부 중인 대학원 학비도 필요하다고 했다.
고교생 최원우(18)군은 10대답지 않은 엉뚱한 답을 했다. "시내는 너무 비싸서 안 되고, 변두리 목 좋은 곳에 5억~6억원짜리 건물 하나 사서 월세를 받으면 고정 수입이 생기겠죠. 나머지로는 아파트 한 채 사고, 그래도 남으면 배낭여행 다니며 살 겁니다."
택시기사 장모(56)씨는 "아직 취직을 못한 맏아들이 제빵학원에 다니는데 아파트 상가 쪽에 제과점을 하나 차려주고 싶다"며 "못해도 7억~8억원은 남을 텐데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 받아서 생활하고, 아내랑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상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양모(34)씨는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가게 주인이 자꾸 월세 이야기를 꺼내서 화가 난다"며 "마음 같아서는 상가를 통째로 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저 내 가게 하나라고 생겨서 월세 아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재테크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은 어떨까? 모 증권사 지점장인 김모(45)씨는 10억원에 대한 분산투자, 즉 포트폴리오를 강조했다. "현재 자산가치가 많이 디플레이션된 상태이다 보니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도 좋을 겁니다.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3억원 정도 투자하고, 만약 아파트가 없다면 시가 3억원 규모의 집도 사고, 또 3억원은 정기예금 금리가 많이 올랐으니 연리 7.5% 정도의 상품에 투자할 겁니다. 나머지 1억원은 CMA 등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게 넣어둔 뒤 그 돈으로 보름 정도 유럽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자산 컨설턴트인 노경우(32)씨는 "(주식과 펀드의 경우) 잘 오지 않는 큰 바겐세일 기간"이라며 "침체기가 지나고 회복기로 접어들 때 주식과 펀드들이 재평가를 받게 되는 만큼 직·간접 투자에 전체 자산 중 절반, 즉 5억원 정도를 분할해 매수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침체는 전 세계적이고, 거품이 제거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동산 공매·경매 등을 활용하여 상가건물이나 임대형 오피스텔 등을 눈여겨봤다가 투자한다면 싼 가격에 좋은 수익의 괜찮은 매물을 확보할 수가 있다고 했다. 노씨는 "자산 중 3억원을 미래 임대수익을 노리고 부동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1억원을 비과세 저축에 넣어두면 약 7% 수준의 이자수익을 노려볼 수 있으며,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CMA 계좌에 1억원을 예치하면 5% 수준의 비교적 괜찮은 이자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론 10억원의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조연호(23)씨는 "금리가 늘 높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 은행에 넣어두기도 만만치않고, 그렇다고 건물 한채를 사기에는 부족하고, 그 돈만 믿고 노후를 보장받기에도 아쉬울 것 같다"며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지만 적당한 재테크 방법을 찾아서 30억원 정도로 늘린다면 그나마 든든하게 여겨질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스개이지만 인터넷에는 '한달 만에 1억원 버는 법'이라는 글도 있다. 10억원을 들고 한달만 주식 투자하면 1억원이 남는다는 것. 비록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만큼 재테크가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은행원 이준욱(40)씨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이야기지만 10년 전 대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채 값이 8천만원 정도이던 것이 지금은 값이 떨어졌다고 해도 2억~2억5천만원에 이른다"며 "물론 10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물가 인상률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하면 은행에 넣어두고 안심할 수 있는 돈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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