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그 단어만으로 유혹은 강렬하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좁다란 길을 걸어보고 싶다거나 단풍을 즐기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오히려 평범하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번 해보자. 너무 위험한가. 추수가 끝난 빈들에 홀로 서서 마음껏 바람을 맞아 볼까. 무작정 단풍 속으로 빠져 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 가만히 있으면 뭔가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계절. 가까운 곳으로 훌쩍 떠나보자.
청도. 너무 자주 가는 길이다. 그러나 국수 한그릇, 한정식 한상 받은 후 차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이 남는다. 배는 채웠는데 가슴이 허전하다. 청도는 먹을거리 외에 마음을 배부르게 할 '문화밥상'이 곳곳에 널려있다. 청도군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청도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인만도 50명이 넘는다. 곳곳에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있고 문화를 이야기해줄 미술관, 문화를 보여줄 전시관이 산재해 있다.
떠나자. 헐티재를 택해도 좋고 팔조령길을 택해도 좋다. 먼저 헐티재를 넘어보자. 가창댐을 들어서면 벌써 도심과 다른 풍경이다. 산은 알록달록하고 가로수길은 가을이 찬란하다. 동재미술관 대구미술광장을 지나 헐티재 꼭대기에 이르면 일단 차에서 내리자.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잔으로 가을여행 준비를 위한 심호흡을 크게 한 후 가을이 깊어가는 헐티재 모습과 청도의 들녘을 그윽한 눈으로 응시해본다.
헐티재를 내리면 첫 입새에 비슬문화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음악회가 열리고 촌장 부인이 만든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 길로 계속 달리면 식당가가 죽 줄지어 있다. 거송정 식당을 지나 좌측으로 보면 태극기가 펄럭이는 집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산쪽으로 가면 도예가 이복규씨의 집과 작업실을 만날 수 있다. 청도가 내려다보이는 이 집의 방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고 가던 길을 계속간다. '도연사' 입구라는 팻말이 보이면 우측으로 꺾는다. 고산마을공원을 지나 800m를 가면 한국화가 전병화씨가 운영하는 전갤러리가 가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오전 11시 이후에 개관한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오던 길을 계속 가면 풍각과 금천으로 나누어지는 길이 나온다. 풍각 쪽으로 길을 잡는다. 돌과 야생화가 아름다운 한옥집 '아자방'에 들르는 것도 좋다. 이 집에는 차를 시키면 가래떡이 나온다. 맛있다. 각북면사무소를 지나 군불로 입구에서 길을 우측으로 꺾는다. 군불로에서 500m를 가면 패션디자이너 최복호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찻집이 나타난다. 사과밭이 있는 갤러리 정원에서 국화차를 한잔 마시면 가을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이젠 작가 작업실을 찾아가 보자. 계속 달려 풍각면 소재지로 길을 잡는다. 농협을 끼고 가다 옥산3리에 도착하면 폐교를 이용한 서양화가 남춘모의 작업실이 있다. 창 너머로 그의 작업실을 구경해 보자. 작가의 작업태도에 진지함이 넘친다.
이젠 유등지가 있는 화양읍으로 방향으로 틀어보자. 유등지 주변 청담갤러리에 들러본 후 2층에 올라 주변을 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감동네라 주인의 감 인심이 푸짐하다. 유등지를 끼고 대구 쪽으로 나오면 감물체험을 하거나 구경할 수 있는 전시장인 '풀과 빛' '꼭두서니' '가시버시'등이 나란히 있다. 여기 바로 옆에 효담도예의 김종백 작업실과 전시실이 있다.
이때쯤이면 배 속이 허전하다. 유등리에서 대구 쪽으로 방향을 꺾어 코미디언 전유성이 운영하는 식당 '니가 쏘다째'에 들른다. 짬뽕 한그릇이면 마음도 배도 느긋해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사진작가 박진우, 서예가 석용진, 한국화가 장두일, 서예가 유장식 등의 작업실이 흩어져 있다.
오는 길에 감을 사는 것도 재미다. 올해는 감이 풍년이어서 감이 지천이다. 당연히 값도 싸다.
김순재기자 sjki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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