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플에 자살도 생각했다…이상규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국립국어원장(55·경북대 국문과 교수)을 둘러싼 세간의 평가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혹자는 그를 두고 '민족주의자', '한글 옹호론자'라 비난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어원장이 아니라 방언원장'이라 비꼬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좌파 인사'라는 꼬리표도 있었고, 'MB맨'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내년 1월 퇴임을 앞둔 그를 13일 오전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만났다. 국문학과 교수 출신에 관료. '고리타분'이라는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웬걸. 그가 20년 전부터 컴퓨터를 다뤄온 '얼리 어댑터'였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수년 후면 고급 식당이나 아파트에 시각·청각·후각을 만족시키는 홀로그램이 설치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는 꽤 할말이 많은 듯했다. '임기가 언제까지냐'는 첫 질문부터 이어진 답변은 올 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사퇴 요구 논란에서 국가지식경쟁력과 울산반구대 암각화를 거쳐, 방언과 유비쿼터스, 대구의 문화콘텐츠 개발에 이르기까지 25분이나 돌고 돌았다. 대구의 폐쇄성과 영어몰입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조폭', '돌은 X' 등의 거친 낱말도 튀어나왔다. 관료 특유의 두루뭉술한 대답은 듣기 힘들었다. 그는 정치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제도권 밖에서 정책 변화를 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며 "누가 기회를 준다면 뛰어들 생각은 있다"고 했다.

◆인터넷 악플, 자살도 생각했다

-퇴임을 두 달가량 앞두고 있는데 그동안 구설이 참 많았죠? (절정은 '놈현스럽다'였다. 국립국어원은 이 말을 2007년 신조어 책자에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등재했다가 '국가원수 모독'이라는 청와대의 힐난을 받았다. 국립국어원은 책자를 폐기했지만 올해 초 '놈현스럽다'가 국어사전에 등재됐다는 잘못된 내용이 네티즌 사이에 퍼지면서 '국립국어원장은 MB맨'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놈현스럽다'는 아주 코믹한 시대의 단상인데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커진 거죠. 그건 괜찮은데 네티즌의 악플과 비난은 정말…. 저도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저에 대한 욕은 괜찮은데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개'를 만드는 거야.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희생되면 사회를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출근길 한강 다리 위에서 5분간 망설인 적도 있어요. 또 국어원장 자리를 두고 저와 경쟁했던 이가 제 아내까지 들먹이며 청와대 등 온갖 기관에 무고를 해서 한동안 마음 고생도 했죠."

-올해 신조어 사전에 '명박스럽다'라는 말도 등재될까요?

"신조어 조사는 하겠지만 정치적 문제나 개인의 인격권과 관련된 신조어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게 원칙입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과잉 반응을 한 거죠. 그냥 뒀으면 올해도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신조어가 등재됐을 텐데. 그러고 보면 반사이익은 이명박 정부가 본 셈이네요. 하하."

-"제가 좌파일 것 같아요? 우파일 것 같아요?" 그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MB맨은 아닐 것 같다'는 게 기자의 대답.

"저는 유목주의예요. 노마디스트라고 할까요. 제 생각의 기본 틀은 지난 시대의 역사적 오류들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념에 고착되지 않고 이기적으로 편승을 하는 거죠. 문명비판론자나 언어 생태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사회적 방식의 틀 속에서 합리적으로 국가 발전에 열정을 갖고 있는 진보적인 성향의 학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만약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 화가가 되고 싶어요. 저는 지금도 '그림 일기장'을 씁니다. 사실 제가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에요. 특히 주황색의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아주 좋아하죠. 고교 시절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두 번 떨어지고 포기를 했죠. 하하. 고교 시절 동창이 이창동 감독 등 3명 정도였는데 사랑과 삶에 대한 문학적 담론들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어요. 그게 국문학과에 가게 된 동기였죠."

-그런데 왜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고 방언학을 전공하신 겁니까?

"문학을 해 보니 좀 황당한 면도 느꼈고, 보다 정교한 것이 언어학이라 생각했어요. 또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방언조사원으로 일할 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더라고. 1979년쯤인가 방언조사를 하러 경북 군위에 한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러 갔는데 소주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4홉들이 소주를 사서 함께 마셨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조사도 제대로 못해보고 직접 장례까지 다 치렀던 기억이 나요."

◆국어원장? 방언원장?

-국립국어원의 역대 원장 중 가장 젊고 지방대 출신에 비주류였는데 관학파의 아성이라는 국어원에서 갈등도 겪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구성원들과 이념적인 갈등이 많았어요. '방언원'이냐는 빈정거림도 있었고요. 저는 철저한 증거를 근거로 설득을 거듭했고 지금은 제가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다 나가라고 했었죠?

"국어원장이 정치적인 자리도 아니고…. 지난 국정감사 때 문화부 정무부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제출하라더군요. 그런데 왜 한 달치만 보냈냐고 연락이 왔어요. 저는 그게 1년치이거든요. 또 감사원에서 감사까지 나왔지만 지적을 받은 게 없습니다. 저는 판공비라도 철저히 업무 영역에만 쓰고 혹시 제3자가 끼어들면 제 사비를 씁니다. 그게 철학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사실 제가 3년간 저축은 한 푼도 못했어요."

-3년의 임기 동안 미처 끝내지 못한 과제가 있나요?

"한글의 세계 보급(세종학당)이나 한글의 정보화(21세기 세종계획), 국어사전 지식 강화 기반 마련 등을 한 것 같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규범의 오류들을 정비하지 못한 겁니다. 가령 '고가사다리'는 띄어 써야 할까요? 가슴둘레는 붙여 쓰죠? 머리 둘레는요? 단어가 복합어인지 합성어인지는 언어학자들의 몫이지만 단어를 띄우게 되면 한글의 조어 능력이 떨어집니다. 또 '소금꽃'이라는 말이 있어요. 파도가 딱 결정체로 바뀔 때 반짝하거나 땀을 흘린 뒤에 남는 허연 소금 결정을 말하는데요. (그가 전자사전으로 소금꽃을 검색해 보여줬다.) 북한어로 표시돼 있죠? 단지 서울 지역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준어가 아니라는거죠. 결국 정책이 언어의 생태 여부를 좌우하는 겁니다. 언어정책은 모국어의 생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해 비판적이시죠?

"배타적인 표준어 중심의 어문정책은 폐지돼야 합니다. 표준어와 비표준어, 지배와 피지배, 지식과 무지 등 타자적 대립구조는 20세기 제국주의의 유산이에요. 그런 양분법적 구분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토속적 지식들이 짓밟혀 없어지고 있는 거죠.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종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생태계가 건강하듯이 언어의 다원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버려두었던 토착 지식을 강화하고 지역 생활 언어 자산과 토속 지식을 보존하고 지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영어만능시대, 한글을 말하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내셨죠?

"영어 공교육은 필요합니다. 영어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시대거든요. 하지만 몰입교육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몰입교육의 이론적 근거는 유사어 계통에서 적용됐던 모델입니다. 가령 중국어와 영어처럼 '주어+서술어+목적어'로 어순이 같다면 모를까, 한국어는 완전히 다릅니다. 시간을 두고 영어의 문장구조를 어떻게 적용시킬지에 대한 연구 없이 몇몇 유학파들의 논리에 따르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이건 학문적 종속주의에 불과합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 결혼 여성이 100만명에 이르는 시대예요.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어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글로벌 시대에 두 나라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길러내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져요. 다문화가정 2세들이 모어(母語)를 학습하고 배울 권리를 줘야 합니다. 문화는 상호주의입니다. 그들에게 한국 문화와 역사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죠. 취학 연령이 된 2세들을 위해서는 외국인 학교를 세워야죠. 그게 어렵다면 특별반을 설치하는 것도 대안이 되겠죠."

-한글을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권이나 문자가 없는 국가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실효성이 없다고도 합니다.

"한글은 표음문자로 대단히 우수한 글자입니다. 몽골이나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문자의 장벽이 굉장히 높습니다. 내몽골 사람들은 말은 몽골어와 중국어를 쓰지만 몽골어를 중국어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쓰라는 얘기는 반발만 부르겠죠.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스스로 국가적 이득은 무엇인지, 인터넷 환경에서 소통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게 좋습니다."

◆변별력있는 문화콘텐츠가 숙제다

-대구가 문화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되려면 무엇이 가장 시급하겠습니까?

"대구는 너무 방어적이고 폐쇄적이에요. 특정 고교 출신들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문을 열지 않아요. 거의 조폭 수준입니다. 제가 지난해 전주에서 열린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을 가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문화 기획력도 있고 실천력이 엄청납니다. 아프리카 사람 100명이 왔는데 전주에 있는 영문과 교수들이 관련 자료를 전부 무료로 번역을 해주고 3박4일 동안 영어선생님들이 자원봉사로 방문객당 2명씩 붙어서 통역을 해줘요. 대구도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앞으로 문화 생산 기반이 천문학적인 돈을 낳을 겁니다."

-대구에도 국제오페라측제, 뮤지컬 축제, 컬러풀 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지만 늘 관변 축제의 틀을 벗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시장을 크게 봐서는 안 됩니다. 작게 시작해도 발전되고 자본력이 축적되면 진화할 수 있습니다. 변별적이고 전략적인 것이 필요할 때죠. 저는 단편영화와 단막극, 다큐멘터리 제작 축제가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정부는 '문화 5대강국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예술 영상 콘텐츠 구축, 단막영화·다큐멘터리 제작 등에 막대한 예산을 책정해 놓은 상태예요.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죠."

-경북대로 돌아오시면 뭘 하실 계획이세요?

"문화·예술 쪽으로 소통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대구 문화계가 너무 세분화돼 있습니다. 마치 깨진 거울 같아요. 외부의 저명인사를 소개하고 통합의 필요성을 경험토록 하고 싶어요. 또 지난달 4일 홍대 앞에서 열렸던 '한글 피어나라' 행사처럼 신천 둔치에 2천여명의 예술가가 모여 광목 위에 시와 그림을 그리는 행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이상규는?=1953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83년부터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2006년 국립국어원장에 부임했다. 그의 전공 분야는 방언이다. '방언의 미학' '위반의 주술-시와 방언' 등 다양한 방언 연구를 내놓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20여편의 저서와 50여편의 논문을 저술했다. 남북 언어학자가 공동집필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78년 시인으로도 등단을 했고 대구문화연대 공동대표,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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