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수학능력 시험의 원조는 예비고사다. 즉 대학에 들어갈 예비관문인데 이 예비고사에서 떨어지면 대학 지원 자체가 안 된다. 지금처럼 점수에 의해서 원하는 대학을 골라서 가는 제도가 아닌 그야말로 한 번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거였다. 그 후 예비고사는 학력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수학능력시험으로 이름짓기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35년 전, 난 대학을 가지 못하는 관계로 예비고사를 치르지 않았다.
예비고사 치르는 날은 학교를 쉬는 게 우리 학교 통례였는데 그 해 따라 웬일인지 시험을 치르지 않는 사람은 모두 등교하라는 학교장님의 명이 떨어졌다. 아마 학년 절반이 시험을 치르지 않은 상태여서 그러한 결정을 한 것 같았다. 많은 친구들은 모두 불만을 드러냈고 그 불평불만은 어느 친구에 의해선가 행동으로 옮겨졌다. 모두'토끼자'였다. 소위 도망치자라는 뜻이었는데 겁이 많은 친구들은 그냥 학교에 남아 있었으나 반 이상이 동조를 해서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수위아저씨가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눈에 잡혔으나 우리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
학교는 물론 손바닥만한 작은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지방 라디오 방송까지 합세를 했고 학교재단의 결정에 의해 급기야는 경찰서 형사들을 풀어 교복 입은 여학생이 눈에 띄는 대로 잡아들이라는 검거령이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난 다행이 친구가 수술해서 입원중인 병원에 있어서 잡히진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당시엔 그 난리가 났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형사가 아버님을 찾아와서 나를 찾아 내 놓으라고까지 했다는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친구 몇 명은 잡혀 들어가 매타작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려서 다음날 학교 갈 일이 태산 같았다.
시퍼렇게 날이 선 학교에서 주동자를 잡아 처벌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때까지 나는 물론, 그 날 도망친 친구들은 여러 날을 불려 다니며 자술서와 반성문 그리고 각서를 써야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난 요주의 인물로 찍혀 수업시간마다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내 아이들이 수능을 치를 때도 그랬지만 매년 이맘때만 되면 그 날의 기억이 살아나 혼자 소리 없이 웃곤 했다. 비록 철없이 저지른 사건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렇게 아름답고 그리울 수가 없다. 이영숙(영주시 휴천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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