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돌았다. 물때가 바뀌어 바다의 얼굴이 변했다. 바람도 한결 매서워지고 물결의 날도 날카로워졌다. 바다 수위도 눈에 띄게 낮아지고 푸른 바다 물빛도 연녹색에서 군청색 쪽으로 중심을 옮겨갔다. 사납던 바다가 잠시 들숨을 쉬는 틈을 타서 김성도 이장이 '사배기' 낚시를 나섰다. 하지만 사배기는 먼 바다로 빠져나가 버리고 거친 파도에 흠씬 젖으면서 겨우 두 마리 건져왔다.
이번 바람은 주로 북동에서 들어왔다. 탕건봉 아래서부터 파도는 사정없이 서도를 후려친다. 김바위에서 삼형제굴 바위 중간 해변은 물결이 허옇게 뒤집어진다.
은근히 걱정이다. 사배기는 때가 되어 나갔다손 치더라도 아직 손맛도 옳게 못 본 '꺽떠구'(개볼락의 별칭)가 모두 빠져나가 버렸을까봐 조바심이 난다. 꺽떠구는 동해안에 널리 분포된 물고기이지만 특히 울릉도, 독도서 많이 잡힌다. 꺽떠구 낚시는 해변에 굴러 내린 집채 만한 바위 틈새가 포인트이다. 낚싯대도 필요 없고 찌도 필요 없다. 낚싯줄에 추 달고 끝에 낚싯바늘을 달아 새우미끼 끼워 바위구멍사이에 집어넣으면 끝이다. 탕건봉 아래쪽 미역바위 뒤쪽에서는 낚시를 넣으면 5초 이내 반응이 온다. 마구 건져 올리면 된다. 크기는 15cm 정도에서 '애들 신짝'만한 것까지 올라온다.
꺽떠구는 살이 여물어 회로도 좋지만 탕거리로 일품이다. 탕으로 먹을 때는 조심해서 먹을 일이다. 뼈가 많아 발라먹기 까다롭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귀찮아서 못 먹는다. 아이들이 억센 뼈에 걸리면 크게 고생하는 수가 있다. 감질 맛 나는 탕이지만 그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어 이곳 사람들은 꺽떠구 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온다. 요즘 같은 늦가을 밤 출출할 때 대파를 툼벙툼벙 썰어 넣어 얼큰하게 양념한 꺽떠구 탕은 별미이다. 넉넉히 한 뜸 들인 다음 라면 사리를 넣어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 잔 기울이면 제 맛이다.
삼형제굴바위는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도 덤덤하다. 동도와 서도 엇비킨 중간에 우뚝한 이 바위섬은 아래쪽에 세 개의 굴이 나란히 뚫려 머리를 맞대고 있는 형상이어서 삼형제굴바위로 이름 얻었다. 그리 머잖은 곳에 있는 하얀 장군바위와 대비되어 시커먼 이 바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삼형제굴바위 뒤쪽 해안에는 약간의 자갈언덕이 발달해 있다. 지질조사나 식생조사를 온 연구원들은 이 자갈언덕을 곧잘 가지만 김성도 이장 부인 김신열 여사는 이곳에 오길 꺼린다. 1948년 '억울한 폭격' 당시 희생당한 주검들이 이 자갈언덕에 묻혔는데 몇 년이 흐른 후에도 신발 신은 백골이 자갈밭 밖으로 삐죽이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 옛날 제주도서 온 선배 해녀들이 그것을 보고 몸서리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자갈언덕 중간에는 커다란 동굴이 하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입구가 막혀 동굴 안을 들어가기 어렵다. 과거 이 동굴에 들어가면 바람 길이 좁아 묘한 짐승의 울음소리, 휘파람 소리, 새소리 등 온갖 잡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강치들이 살던 시절, 이 해안 동굴은 그들의 태생지이자 생을 마감하는 무덤이기도 했다. 김성도 이장은 지금도 이곳에 들어가면 그 옛날 강치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주변 섬들 둘러보기'는 동도, 동키바위-장군바위-구선착장-천장굴-촛대바위를 돌아 서도 어업인숙소 앞을 지나 코끼리바위-넙덕바위-상장군바위-탕건봉-김바위-미역바위를 거쳐 8자(字) 모양으로 돌아 다시 동, 서도 사이 선착장으로 왔다. 이 구간을 돌아봄으로 독도의 아름다움과 강건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부는 독도를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고시 한 후 1999년에는 다시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명칭 변경을 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지금은 일부 학술조사기관 연구원, 언론사 관계자, 행정직원, 각종 공사 관련자만이 출입하는 것으로 그친다. 앞으로 독도 보전과 개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마련되고, 그에 따라 일반인들도 우리 민족의 영(靈)이 서린 우리 땅 동쪽 끝, 독도의 비경들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