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장거리 도보 여행을 통해 비행 청소년을 교화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다. 법원의 협조를 얻어 소년원이나 감옥에 수감된 청소년을 어른 자원봉사자와 1대 1 짝을 이뤄 4개월간 2천500㎞ 정도를 도보여행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길 위에서 마주치는 각양의 사람들,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여행이 갖는 치유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언론인 출신이자 도보 여행가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씨는 직장을 은퇴한 후인 61세 때 오랫동안 꿈꾸었던 장거리 걷기 여행에 나섰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西安)까지 1만2천여㎞에 이르는 실크 로드 횡단 코스였다. 젊은이들도 감히 도전하기 힘든 멀고도 험난한 길. 하지만 그는 4년여에 걸쳐 끝내 걸어냈다. 도보여행기인 저서 '나는 걷는다'에서 올리비에 씨는 걷기 여행의 가장 큰 미덕을 "자신을 되돌아보며 깊은 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국내서도 '제주 올레길 걷기'가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화제다. 제주가 고향인 언론인 출신의 서명숙 씨가 장거리 걷기 여행 붐을 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800㎞ 도보 여행 코스인 세칭 '산티아고 가는 길(카미노 데 산티아고)'을 다녀온 그녀가 제주도에 산티아고 못지 않은 '우리의 길'을 내겠다고 작정한 데서 비롯됐다. '올레'는 거리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일컫는 제주 방언. 현재 서귀포를 중심으로 10코스까지 도보 여행길이 개척돼 있다 한다. 억새가 무리 진 한적한 산길과 푸른 바다를 낀 해안길, 햇살 마구 쏟아지는 들판길, 군데군데 소똥이 깔린 길까지…. 탄성을 연발하게 하는 아름다운 길들과 마음이 푸근해지는 소박하고 정겨운 길들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여러 날에 걸쳐 걷는 코스다. 바쁠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 느릿느릿 걸어가는 길이다. 여럿이서 걷는 것도 좋겠지만 더욱 좋은 것은 혼자 걷는 것이다. 오로지 홀로, 자신의 두 다리로 걸으면서 자연과의 교감과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 그를 통한 느림과 비움, 침묵의 미덕을 보다 확연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좌고우면할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이 잃어가는 미덕들 아닌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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