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사진 한 장을 앞에 놓고 사람들의 격론이 벌어진다. 도대체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그때, 누가 목청껏 말한다.
"욕구가 생기면 외설인 거고, 눈물이 나면 예술인기라!"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적인 특성 탓일까? 요즘 우리 미술 동네엔 눈물을 가져오는 감동이 없다.
일본 동경에서 개인전을 할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그림 '꽃피는 시간'을 하고 있었고, 그림 속의 꽃들은 화사했다. 덕분에 동경의 준A급 화랑에 전시 초대를 받았고, 작품 판매로도 이어져서, 속마음으로는 돈 계산에 부풀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일본인 화랑주가 옛날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지금은 왜 이런 그림을 더 그리지 않냐?"며 팸플릿 하나를 되짚었다. 그것은 한때 존재론적 질문을 계속하면서 내가 몰입했던 독일 표현주의 양식의 어두운 그림들이었다. "그걸 계속하면 난 우울증에 빠져 죽는다. 관람자를 즐겁게 하는 꽃그림이 좋지 않으냐?"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실소를 머금으며 "천만에, 사람들은 화가가 우울증에 빠져 죽어야 진짜 기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당신의 옛 그림을 더 지지한다."
그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작품은 치열해야하고 예술가의 삶도, 창작태도도 진정성을 가져야한다는 충고의 말을, 그가 나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투명한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진정성을 가진 화가이셨다. '위대한 평범'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 말라비틀어진 명태 몇 마리와 석류, 토기 같은 무덤 속 부장품과 버려진 폐선을 그렸다. 어렸을 땐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의 예쁜 것들 다 두고 도대체 왜 저따위 버림받고 쓸쓸한 사물들만 찾아서 그리는 것일까, 지겨워 죽겠어, 하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최근에 아버지의 유작들이 전시되었다. 당대에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늘에 묻힌 채 작고한 대구근대화가 재조명을 위한 기획전시회였다.
명태와 석류와 무덤 속 부장품들이 주제인 아버지의 정물화는 존재감이 뚜렷하고 순수했다. 전시되어 있는 20여점의 그림들 모두 기교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상자의 마음을 흔들어 이곳이 아닌, 보다 깊은 세계로 이동시키는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힘은 오랜만에 만나는 그림 속의 감동이기도 해서, 나에게 예기치 못한 울음을 만들었다. 한 때 술의 힘에 기대어 살기도 했지만, 입 딱 벌린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들고 "와서 들어 봐, 이 기막힌 소리를! 들리니, 들리지?" 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무욕한 일상도 떠올랐다.
백미혜(시인·화가·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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