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두진의 책속 인물 읽기]'시인'의 김병연과 이문열

과거는 현재를 통해 복원된다

같은 책을 두 번 언급하는 것은 열없지만 소설 '시인'의 김병연과 작가 이문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문열이 설화로 잘 알려진 김병연(김삿갓)을 굳이 소설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알려진 설화와 다르게 김병연을 서술한 이유는? 이문열이 '역적의 자식' 김병연과 '빨갱이의 자식'인 자신을 동일시한 것은 아닐까. 김병연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김병연과 이문열의 어린시절은 '역적의 자식' '빨갱이의 자식'으로 정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와 듬성듬성한 기록, 시편이 전부다. 역사 소설이 그렇듯 소설 '시인'에서 빠진 부분을 채우는 것은 작가 이문열의 상상력이다. 이는 결국 작가의 당대적 경험이 과거 인물에 소급 적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가 이문열이 시인 김삿갓을 설화의 무덤에서 호출한 이유는 김삿갓을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 '시인'을 통해 보이는 김삿갓의 피와 뼈, 육신은 이문열의 경험(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 포함)인 셈이다.

김삿갓(김병연)이 할아버지의 '배신'으로 체제의 복수를 당했다면 이문열은 아버지의 좌익활동 및 월북으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병연의 조선사회가 충과 효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였다면 이문열의 한국사회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였다. 김병연이 '역적의 자손'이었다면 이문열은 '빨갱이의 자식'이었다.

냉전시대, 아버지가 월북한 사람이라면 어떤 고초를 겪었을까. 이문열의 소설 '변경'은 그가 아버지의 월북으로 얼마나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서 '이문열의 분신'이 털어놓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김병연이 백일장 즈음에 할아버지를 '무(無)'라고 규정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백일장에서 김병연은 할아버지를 탄하라는 시제를 받고 고뇌한다. '어떻게 할아버지를 탄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김병연은 고뇌 끝에 결심한다.

'어떻게 익힌 학문이고 시인데 여기서 돌아선단 말이냐. 여기서 밀리면 서울의 옛 집으로, 지난날의 번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영영 가망 없는 꿈이 되고 만다.'

소설 '시인'에 드러나는 이 진술은 김병연의 체제편입, 신분상승 욕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불어 아버지의 좌익활동과 월북으로 가난과 감시를 받았던 작가 이문열이 사법시험을 통해 체제복귀를 꾀했던 점을 생각나게 한다.

김병연에 대한 설화는 여기저기 끊어진데다 '부끄러워 삿갓을 썼다'로 단순하다. 여기에 고뇌에 찬 살을 붙인 것은 작가 이문열의 체험과 자기투사일 것이다. 없어진 과거, 혹은 없던 과거가 현재를 통해 복원되는 셈이다. 이문열의 자기투사를 짐작할 만한 대목은 아주 많다. 예컨대,

'당신이야 일평생 좋아서 떠도셨겠지만 나는 뭐고 어머니는 뭔가요. 당신은 당신의 한을 이기지 못해서라지만 그게 새로운 한을 기르고 있었다는 것은 모르셨겠지요. 당신은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던 내 한을 아시는지요.'

전국을 떠돌던 아버지 김병연을 남도 하동에서 찾아 집으로 모셔가던 중 아들 익균이 드러내는 속마음이다. 더불어 이 장면은 아버지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가난과 멸시를 받았던 작가 이문열의 어린 시절이 투사된 장면이다. 소설 '변경'에서 '이문열의 분신'은 아버지를 정액 한 방울에 비유하기도 한다. 김병연의 아들 익균에게 아버지는 '정액 한 방울'과 다를 바 없다.

소설가는 자신과 정반대의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소설 속 인물은 작가 자신이 투사된 인물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 비중이 큰 인물일수록 그럴 것이다. 그러니 결국 '시인'의 김병연은 이문열인 셈이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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