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제2,101호)에 주필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게재했다. 11월 17일 체결된 을사조약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 사설. 장지연은 이글에서 국권침탈의 조약을 폭로하고, 일제의 침략과 을사5적을 규탄하면서, 국민의 총궐기를 호소했다. 황성신문은 이 논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평소 발행부수 3천부보다 훨씬 더 많은 1만부를 발행했다. 또한 일제 헌병대의 사전검열을 거치지 않고 전국에 배포했다. 이 일로 장지연은 체포, 투옥되었으며, 황성신문도 압수 및 정간 처분됐다.
64일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했다가 이듬해 귀국, 경남일보 주필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탄이 되자 통분을 참지못하고 자살한 황현의 절명시를 실어 경남일보마저 정간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1864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위암 장지연은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여헌 장현광의 12대 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다. 1894년 진사가 되었고, 이후 다양한 구국운동과 언론 활동을 하다가 1920년 자택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1897년 독립문 세움 ▶1975년 서문시장 대형화재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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