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 연기의 추상/한분순

1

맴돌다

감기다가

뱅, 뱅, 맴돌다 슬리는

차지도 뜨겁지도

그 중간도 아주 아닌

그을려 그을려서 된

봄……꽃……

환한

그런 꿈.

2

비로소 깨달았네. 회한을 꼭 닮은 것.

섧어서 별리가 섧어 화석이 된 공기여.

3

숲에 살자. 갈밭은 싫니?

별이 쏟아지는 밤이면 아무데면 어떻누?

목숨을 빚을 무렵에 으레 서리는 촉루.

자,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데요. 연기만 해도 앞이 흐릿한 판에 아닌 추상이라니. 그래요, 이럴 땐 그저 느낌으로 읽는 겁니다. 의미와 의미의 충돌이 빚어내는 전혀 다른 의미의 출현. '맴돌다/감기다가……슬리는', '차지도 뜨겁지도/그 중간도 아주 아닌', 사라졌나 하면 다음 순간 다시 환한 꿈으로 되살아나는 그런 것. 회한을 꼭 닮은, '별리가 섧어 화석이 된 공기'에는 뭔가 말 못할 정분 같은 게 녹아 있습니다. 그 애틋함이 귓전을 적시는 나직하고 다감한 속삭임이 됩니다. 사랑 앞에 숲이건 갈밭이건 무슨 상관입니까. 별이 쏟아지는데 아무데면 어때요. 대미는 정반합입니다. 목숨을 빚는 것이 정이라면 거기 서리는 촉루는 반이요, 이 둘의 교감 속에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이 곧 합이죠. 아무래도 불가의 윤회와 기미가 통하는 눈칩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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