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아들 내외로부터 받은 감사장

아이 낳아도 키우기 힘든 현실/국가 미래 위해 '양육복지' 급해

근래 아들 내외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작은 액자에 넣은 것인데, 아들 내외가 손녀를 안고 찍은 사진도 들어 있었다.

'수향이가 태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항상 저희를 먼저 생각하시고 큰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략) 수향이가 밝고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봐 주세요. 우리 가족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두 분께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이런 감사장은 처음이어서 얼떨떨하기도 하였다. 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데, 나는 부모님께 한 번도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고 말해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며느리가 손녀를 출산하기 전부터 우리 내외는 큰 고민에 빠졌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가 출산하면 누가 양육할 것인가. 아내 역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퇴직하고 손녀를 양육하는 일을 맡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손녀의 양육은 외가에서 맡기로 결정이 났다. 아들 내외에게 아이 셋을 낳아달라고 부탁하던 나는 머쓱한 꼴이 되고 말았다. 대책도 없이 필요성만 강요한 셈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출산을 권유하며 "이것이 애국하는 일이다"라고 하면, "우리나라 환경으로선 아이를 많이 가질 수 없다"고 간단히 대답한다. 국민연금을 낸 것만큼 받지 못하는 원인은 低(저) 출산 多(다) 고령자 현상에 있다. 저 출산문제는 국가경제와 민족번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나라는 차츰 노인국이 돼가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전 세계 156개국을 분석한 '2008년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 감소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는 평균 자녀 수(평균출산율)가 1.20명으로 홍콩(0.96명)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낮다.

한국에 사는 20대 후반과 30대 여성들은 육아해결을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로 꼽는다. 저 출산과 고령사회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국가발전과 민족장래는 어둠의 터널로 빠져들고 말 것이 분명하다.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장려책이 나와야하고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세 자녀를 출산할 경우에 장려금과 아파트청약에 우선순위를 준다는 정도로는 실효성이 없다. 이제 자녀출산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아선 안 된다.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여 국민의 자녀라는 개념에서 출산환경 개선과 제도 개선을 단행해야 한다. 임신에서부터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

국가재정 문제의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저 출산문제를 가정에만 맡겨두는 태도는 현실과 미래를 파악하지 못한 인식이다. 한 아이의 출산으로 부모, 친가, 외가의 어른 6명이 고민에 빠지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출산기피 현상은 지속될 것이고, 민족의 앞날은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손녀 첫돌을 맞아 아들 내외로부터 받은 감사장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외가에서 양육하기 때문에 간혹 만나는 날이면, 얼굴이 낯설어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그러나 이건 다행한 경우에 속한다. 손자가 외국에 있어서 일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처지가 된 노인들도 많고, 결혼시킨 자녀가 오랫동안 손자를 낳지 않아 안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손자와 간신히 안부를 주고받지만, 노인들은 혈연의 정을 아쉬워한다.

현대의 핵가족제도는 祖孫間(조손간)의 단절을 가져왔고 노인들에게 애정결핍을 안겨주고 있다. 조손간의 따뜻한 혈연관계의 복원은 가정과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정목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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