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투박한 간판·뒤엉킨 전깃줄…'컬러풀 대구' 제자리 걸음

[대구 도심 재창조] ⑥대구만의 디자인이 없다

▲ 동성로는 저마다 크기와 색깔을 내세운 간판들, 전봇대와 전깃줄에 시야를 내준 지 오래다. 길에는 차량까지 뒤엉켜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무질서와 뒤엉킴과 위험이 대구 도심의 얼굴 동성로의 이미지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 동성로는 저마다 크기와 색깔을 내세운 간판들, 전봇대와 전깃줄에 시야를 내준 지 오래다. 길에는 차량까지 뒤엉켜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무질서와 뒤엉킴과 위험이 대구 도심의 얼굴 동성로의 이미지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 대구시와 중구청은 동성로에 대구읍성의 흔적을 살리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바닥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제 첫걸음을 뗀 대구 도시디자인 사업의 갈 길은 멀다.
▲ 대구시와 중구청은 동성로에 대구읍성의 흔적을 살리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바닥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제 첫걸음을 뗀 대구 도시디자인 사업의 갈 길은 멀다.
▲ 서울 종로구 이화동
▲ 서울 종로구 이화동 '낙산' 지역은 공공미술의 손길이 닿으면서 주민들의 삶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고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살고 싶고, 찾아오고 싶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화두이고 대세다. 도심재창조에 나선 세계 각국 도시들은 이미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 만들기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심에 어떤 디자인을 입히느냐에 따라 도시 전체의 경쟁력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시들은 거리 곳곳의 간판, 공공시설물에서부터 대형 빌딩에 이르기까지 해묵은 옷을 벗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입을 것을 요구한다. 교통 신호등이나 벤치의 모양을 바꾸고, 지하철 개찰구나 버스 정류소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공원과 가로수에 도시의 색깔을 입히고 있는 이유다.

◆대구역 앞에서는 대구가 안 보인다

컬러풀 도시를 외치는 대구. 대구의 색깔은 무엇이고 외지인들은 대구를 어떻게 느낄까.

지난 18일 오후 대구역. KTX가 열차 수송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동대구역에 관문 기능을 내줬다고 하지만 여전히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적잖이 드나든다. 문제는 광장도 없는 역사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차를 타거나 지하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열차에서 내려 대합실에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지하도로 내려가는 입구뿐. 오른쪽은 지하차도로 막혔고 왼쪽으로는 롯데백화점 주차장 진입구가 나타나 '여기가 대구'라고 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역 앞은 황량했다. 서울역이나 부산역, 대전역 앞에 펼쳐진 광장들이 개방감이나 활력을 보여주며 도시의 첫 이미지를 밝히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개를 들어 도심 쪽을 바라봐도 대구는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의 행렬 뒤로 시커먼 도로와 동성로가 시작되는 지점이 보일 뿐 어떤 이미지도 색깔도 찾을 수 없었다. 한 시민에게 대구역 앞의 느낌을 묻자 "대구에 처음 온 외지인들이 역을 나와 횡단보도 하나 없이 땅굴(지하도)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손님에게 몹쓸 짓"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세권을 제2의 도심으로 개발하기 위해 대대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대구 관문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다음달 경관 용역을 발주하는 등 정성을 쏟고 있다. 하지만 도심 관문인 대구역은 백화점에 자리를 내준 채 외면당한 지 오래다.

◆동성로에는 색깔이 없다

'대구'라고 하면 '동성로'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동성로는 대구의 핵심 브랜드다. 도시디자인이 도심재창조의 원천이라면 그 대상은 단연코 동성로부터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성로의 겉모습을 뜯어보자. 서울의 명동이나 부산의 서면과 비교하면 너무 멀리 뒤처져 있다.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이 시작돼 중앙파출소~대우빌딩 구간에는 디자인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바닥 공사에 머물고 있다. 고개를 들면 건물마다 화려함과 크기만 앞세운 간판들이 빼곡해 혼란스럽다. 불쑥불쑥 솟아난 전봇대와 꼬인 전깃줄, 사람들은 차와 뒤엉켜 전투하듯 걷는다. 대구만의 이미지나 색깔을 동성로에서 찾기는커녕 불편하고 엉망이라는 불쾌감을 던져주기 딱 좋은 형편이다.

대구시가 무질서한 간판 문화를 바꾸기 위해 '간판 가이드라인'을 확정했지만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중구청이 지난해 동성로 통신골목의 간판 정비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했지만 간판 뒤쪽의 낡은 벽체가 드러나거나 간판 대신 대형 현수막을 거는 등 부작용이 크게 불거졌다. 주민, 상인들의 동의를 제대로 끌어내지 못한 채 관 주도로 이루어지는 디자인사업으로는 '대구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건축물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옥외광고물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유럽 도시들은 보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벤치나 조형물, 가로 판매대, 안내표지판을 만들되 주변과의 어울림을 고려하고 개성을 살려 배치한다. 빨리 따라잡지 않으면 세계 도시의 명단 속에 대구를 올릴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삭막한 북성로에 공공미술은 어떨까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취재팀은 도심 속 달동네가 '공공미술'을 통해 어떻게 '문화 동네'로 거듭났는지 취재했다. '낙산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사업으로 가파른 계단이나 촘촘한 골목, 겹겹이 붙은 건물 외벽 하나하나에 작품들이 그려지고 설치되면서 이 달동네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주민들과 함께 만든 작품도 여럿이었다. 작은 슈퍼 앞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계단에 커다랗고 예쁜 국화가 그려지면서 고달픈 삶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며 "주민들 말고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외지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며 북적이는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 도심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북성로. 철물점과 공구점이 빼곡하고, 오토바이와 차량이 빈틈을 메운 사이에서 사람들이 얽혀 살고 있다.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일이 없으면 외지인은 물론 대구 사람들조차 잘 찾지 않는 곳. 낮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붐비지만 밤에는 인적을 찾기 힘들다.

북성로에 공공미술을 입히는 것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북성로의 공장이나 상가의 셔터, 건물의 외벽, 옥상, 간판 등에 예술 작품을 입히면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북성로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구상가와 철물점, 각종 설비업소들이 형성한 북성로의 오랜 이미지에 걸맞게 작품을 배치하면 새로운 문화충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공장 예술촌, 달동네 미술품, 정육점 옆 갤러리 등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엄청난 효과를 나타내는 사례는 서울은 물론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단지에 공공미술을 입히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김윤환(44) 문래비쥬얼아티스트 네트워크 대표는 "철공소 지역에서 연극이 공연된다고 하면 엄청난 인파가 모이는데 재미있는 곳을 다니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며 "대구 북성로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공공미술이 역할을 한다면 대구의 독특한 디자인 하나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기자 서상현기자 사진·이재근기자

▨ 대구 도심재창조 자문위원단

김성년(경북대 시각정보디자인학과 교수) 김주야(김천과학대 건축인테리어과 교수) 도현학(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박원회(한도엔지니어링 대표) 이장우(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하정화(미학박사) 홍경구(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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