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공간]이발소-50년 외길인생 최상호씨

"최상의 헤어스타일 제 손에 달렸죠"

"60년대 초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머리카락 모양을 본 딴 맘보머리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었죠. 앞머리 일부를 곱슬머리로 만들어 이마 위에 살짝 걸치는 맘보머리는 당시 멋쟁이들의 유행 헤어스타일이 되면서 머리카락이 짧았던 중고생까지 흉내 내 달라고 요구할 지경이었으니까요." 대구시 중구 남산1동 대구초등학교 정문 앞 하얀 간판 상단에 작은 글씨로 'since1964'가 적혀 있는 'HyoSung Men's Hair Shop(효성이발소)'. 여성 면도사를 제외하곤 남성들만의 전용공간이었던 옛 이발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한 곳으로 54년 외길경력의 현역 이발사인 최상호(71)씨의 10평 남짓한 일터다.

"미련이 남아 간직해 온 이발도구가 이렇게 새삼 취재거리가 되네요."하며 그가 꺼내 놓은 손때 묻은 이발도구들은 이미 녹과 때가 한 꺼풀씩 두껍게 덮여 있다. 40년 됐다는 수동 바리캉은 한 쪽 손잡이가 부러졌고 비누를 풀어 면도용 거품을 내던 면도 컵도 짙은 때만 벗겨내면 아직 쓸만해 보인다. 옛 이발소의 대표소품으로 면도칼을 갈았던 '피대'도 꺼내 걸고 녹슨 면도칼을 문질러 봤다. 몇 번 문지르지 않았는데도 하얗게 날이 선다. 맘보머리용 고대기는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따뜻한 수건으로 입과 턱 주위 피부를 부드럽게 한 후 비누거품을 바르고 피대로 날을 세운 면도칼로 수염을 깎으면 웬만해선 모두 골아 떨어지기 일쑤죠." 요즘엔 최신식 전동식 바리캉이 나왔고 면도칼도 무디어지면 갈아 끼우며 되는 시대지만 60년대~80년대까지 일세를 풍미했던 수동식 바리캉과 면도날을 세우던 피대에 대한 은근한 자랑이 묻어난다.

현재 40,50대 남자들이 어릴 적 이발소에 갔을 때 한 번쯤 앉아 봤던 두꺼운 나무판자도 있다.

"원래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몇 해 전 없어졌고 이거 하나 남았어요. 이 판자도 40년은 족히 됩니다." 미장원 등에서 이발을 해도 머리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 경우 소문을 듣고 효성이발소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최씨는 얼굴과 머리모양을 대강 손으로 한번 만져보면 어떤 머리형태가 가장 잘 어울릴 지를 단박에 파악한다. 이 때문에 최씨에게 한 번 머리를 맡기면 바로 단골이 된다고. 반세기가 넘게 남자들의 머리카락만을 다듬어 온 노하우인 셈이다. 요즘도 최씨는 하루평균 10여명의 고객을 맞고 있다.

"자신에게 맞는 머리카락형태를 못 찾았던 사람이 제가 조발한 모습을 보고 만족할 때가 가장 보람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이발소 운영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80년대 후반 등장했던 퇴폐성 이용소 때문. 이후 엄마들은 아이들을 미장원으로 데려가 머리카락을 깎게 하면서 이발소의 고객들이 많이 줄게 됐다. 하지만 그 전엔 70년대의 장발단속 덕을 보며 호황을 누리던 때도 있었다.

그는 "의자 8개를 갖고 영업을 했는데 그 땐 정말 출근 후 앉을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머리카락만 깎을 때도 있었죠. 면도사 등 종업원도 8명이나 됐고. 그렇게 일주일을 영업하면 수입은 당시 공무원들의 한달봉급과 맞먹었죠"고 회상했다.

최씨는 이어 "이용기술에 관한 한 대구는 전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이용기능장도 대구가 가장 많고요."고 강조했다. 17살에 이용분야에 입문, 지금까지 현역 이발사로 뛰고 있는 그는 대구경북이 배출한 228번째 이용사이기 하다. 228번은 62년 그가 취득한 이용사 면허증 번호다. 요즘은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필기시험은 위생학만 공부하지만 당시만 해도 위생학에 해부학까지 공부를 했다.

"이발의 기원은 외과에서 머리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내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거죠." 이발사들이 입는 흰 가운 역시 이러한 역사적인 기원과 무관하지 않다. 또 이전엔 기술전수도 각각의 이용경력자가 배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재 최씨에게 이용기술을 전수해 문을 열고 영업하는 곳만도 10여 곳이다.

최씨는 대구시 중구이용사협회 지회장과 대구시 기능경기대회 집행위원을 역임했으며 둘째아들이 같은 길은 걷고 있는 대를 잇는 대구의 이발사 1호이기도 하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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