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공간]구멍가게

길거리에 던져 놔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10원은 가치 없는 돈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10원이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마다, 코너마다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었던 구멍가게에 가면 10원으로 살 수 있는 과자가 너무 많았다. '자야', '뽀빠이', '라면땅', '딱따구리', '아폴로', '쫀드기'는 3~4평 남짓한 1970년대 구멍가게에서 과자들의 대명사 자리를 지켰다. 특히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연탄불 위에서 만들어 먹던 포또(달고나의 경상도 사투리, 설탕을 녹인 후에 소다를 넣어 만든 즉석과자)는 아련한 옛 향수를 자극한다. 요즘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제일 싼 껌 한통 가격이 300원이다. 곧 300원짜리 껌이 500원짜리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구멍가게들이 어느날 하나, 둘 모습을 감추더니 이제는 찾아 보기가 힘들어졌다. 할인점이 도심 곳곳에 들어서면서 구멍가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가게를 확장하고 시설을 개조해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을 내걸 형편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은 설 땅을 찾지 못해 결국 폐업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구멍가게도 고사 직전이다. 대구 남구 이천동 복개도로 주택가에 가면 30여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허름한 구멍가게가 있다. 흔한 간판도 없다. '담배'라고 붙어 있는 글씨가 구멍가게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3평 남짓 한 가게 안을 주인(72)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3,4년전까지 아이스크림·과자 등을 팔았지만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다. 동네에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가격 경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전두환 정권까지만 해도 주변에 구멍가게 많았어. 아이스크림 1개를 팔면 20원 남는데, 할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헐값에 내놓는 바람에 냉동고 전기세도 나오지 않아 판매를 중단했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연탄 보일러로 교체하는 사람이 많아져 대신 번개탄을 팔고 있어"라고 하소연했다. 구멍가게 물건을 살펴보니 여느 구멍가게와는 사뭇 달랐다. 음료수·과자 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번개탄과 담배, 프로판가스가 차지하고 있다.

남구 대명동에 있는 또다른 구멍가게도 사정은 비슷하다. 1977년부터 가게를 운영해 온 정모씨(여·64)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시절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아 늘 다리가 퉁퉁 부어 있을 정도였죠. 장사하는 재미에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10년 번 돈으로 집도 사고 자식 교육까지 시켰다"며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구멍가게 매출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에는 속된 표현으로 '파리를 날리게 됐다'고 한다.

"팔다 남은 물건은 식품회사에서 가져가 새 것으로 교환해 주기 때문에 구멍가게 장사에는 재고가 없습니다. 자기만 부지런하면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요즘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손님이 북적되던 시절, 새벽 4시에 시작해 밤 12시까지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물건도 식품회사에서 대량으로 공급 받았으나 현재는 대형할인점에서 조금씩 구입해 판매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도 오전 내내 마수걸이를 못하다 정오쯤 겨우 음료수 두개(1천200원)를 팔았다고 했다. 그나마 여름에는 사정이 조금 좋단다. 더운 날씨 탓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사러 제법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면 걱정이 앞선다. 불황을 이기려고 겨울에 오뎅, 붕어빵도 팔았지만 예순이 넘어면서 기력이 딸려 그마저도 포기했다.

"한달에 20만원하는 가게 임대료 내기도 힘들어 몇년 전 가게를 내놓았으나 인수자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가게 문을 열고 있습니다. 종일 있어봐야 손님얼굴 보기 힘듭니다. 주변에 병원이 있어 병문안 가는 사람들이 간혹 작은 음료수 한 상자를 사가지고 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정씨는 자식들이 훌륭하게 컷고, 남에게 해를 끼지지 않고 살았다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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