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미국 영토의 동남쪽 끝에 자리잡은 플로리다는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라는 별명답게 멋진 날씨를 자랑한다. 지난 7일, 플로리다주립대학이 있는 게인즈빌(Gainesville)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떨어진 앤디 로빈슨(Andy Robinson·40)씨의 농장에도 가을답지않게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앤더슨씨는 3천에이커(1천211만㎡·약 367만평)가 넘는 농장에서 땅콩을 재배한다. 하지만 농장 전체에 다 땅콩을 심지는 않는다. 수확량 모니터로 확인한 결과 농장 일부에서는 생산성이 아주 낮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정밀농업을 채택하는 이유는 소득 향상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투입비용보다 소득이 적게 나온다면 아예 농사를 짓지않는 게 현명하죠."
그와 함께 트랙터에 올랐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운전석 앞 유리창에 부착돼 있는 '라이트 바'(Light bar). 정밀농업기기 가운데에서도 최근 사용이 가장 확산되고 있는 GPS(지구측위시스템) 이용 농작업 경로안내장치다. 트랙터가 기준선을 벗어날 때마다 초록색, 빨간색 등이 깜박거리면서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것을 주문한다. "넓은 농장에서 씨를 뿌리거나 비료·농약을 줄 때 빠트리거나 중복되는 곳이 없도록 도와줍니다. 작업자의 피로도 덜 수 있고 농자재 사용량도 줄여줍니다." 라이트 바와 기준선 모니터만 보며 운전하는 로빈슨씨의 설명이었다.
그가 정밀농업을 시작한 것은 2001년. 플로리다의 땅콩농장 중에서는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조기 채택자·남보다 빨리 제품을 이용해 보고 주위에 정보를 알려주는 성향의 소비자)였다. 지금은 주변 땅콩농장의 30% 이상이 정밀농업을 시도하고 있다.
플로리다주립대 이원석(46·농업환경공학) 교수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정밀농업 이용 재배작물이 옥수수·콩에서 땅콩, 면화, 오렌지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며 "작목별로 필요한 핵심기술 개발이 늦어져 전체 농업으로 확산은 더딘 편이지만 미국 내 거의 모든 대학에서 정밀농업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정밀농업 확산의 척도로 자주 인용되는 변량시비(비료살포량을 토양성분에 맞게끔 인위적으로 위치에 따라 다르게 주는 일) 면적도 최근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미주리대학 케네스 서더스(Kenneth Sudduth) 교수는 "변량시비 면적은 1990년대 말 전체 옥수수 생산면적의 18%에 이르렀다가 토양 성분지도 작성 비용보다 효과가 적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차츰 감소했지만 다시 증가하고 있다"라며 "2006년에는 전체 옥수수 재배면적의 25%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학계에 따르면 사탕수수와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일수록 정밀농업 수익성 향상효과가 높고 콩·옥수수는 중간, 밀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정밀농업을 적용하고 있는 농가는 대부분 평균보다 2, 3배 큰 500㏊ 이상의 대규모 농가였고 농장규모가 클수록 농자재 투입량 감소효과도 커져 토양조사 등 본격적 정밀농업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미국에서도 아직 완벽한 정밀농업은 실시되지 않고 있다. 변량 농약살포와 파종은 전체 재배면적의 3~7%에만 쓰이고 있다. 인공위성 사진이나 항공촬영을 통한 리모트 센싱(물체로부터 반사 또는 방출되는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물체의 성분·종류·상태 등을 조사하는 기술)은 이보다도 이용률이 더 낮다.
하지만 정밀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장의 규모나 기술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사용해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기술을 따라가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싼 농기계를 구입해 가면서까지 정밀농업을 앞서 시작한 이유에 대해 앤디 로빈슨씨는 한마디의 말로 명쾌하게 대답했다.
미국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이상헌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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