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이웃집에 불이 났다. 지붕이 내려앉고 기둥이 무너질 판이다. 언제 불이 이쪽으로 옮겨 붙을지 모르니 더욱 애가 탄다. 그런데 아직 자기 집에 불이 붙기도 전에 물부터 끼얹는다. 당장 뜨겁다고 선풍기를 돌려대니 '불난 집에 이런 부채질'이 없다. 이웃집이야 마음먹은 대로 물(달러)을 뽑아쓸 수 있지만, 우리집 물탱크는 바닥이 보이는데도 그렇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위기에서 한국 정부가 내놓는 경제 정책이 딱 그 꼴이다.
요즘 한국 경제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갖가지 대책들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있을까. 이한구(63·한나라당·대구 수성갑) 의원을 만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나라당의 경제 브레인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그를 만나면 답이 보일까 싶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그는 냉정하고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별다른 계파도 없다.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정체 불명의 위기"라며 "위기의 실체나 규모를 모르기 때문에 공포감이 더 큰 것"이라고 했다. "당분간 한국경제가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고 상당수가 직장에 쫓겨나고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도 했다.
◆현 경제위기는 정체불명의 위기
-현재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냐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거품을 거품으로 막으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고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식으로 대처를 하면 당장은 고통이 덜할지 몰라도 결국 물가 불안을 일으키고 국제수지를 나쁘게 해요. 더 큰 고통이 찾아오죠. 지금은 근원적인 대응을 하라는 겁니다.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을 내놔야 될 거 아녜요. 규제도 확실하게 혁파하고 감세도 경제를 살리는 감세를 하고 공공기관도 개혁시키고. 그렇게 거품을 빨리 제거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거죠. 미국은 불난 집이니까 어떤 짓이라도 하겠지만 우리가 미국을 따라하면 감당을 어떻게 합니까. 없는 집이 있는 행세하면 안 되잖아요."
-정부가 경제위기 상황마다 내놓은 정책들이 IMF 외환위기 당시와 판박이입니다. 왜 비슷한 정책을 남발할까요? (1997년 IMF 사태 당시 정부는 진로·기아·한보 등 7개 부실 재벌기업들을 회생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고, 결국 은행들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 외환시장에 투기 세력이 들어오자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투입했고, 주가가 떨어지니 투신사들을 동원해 주가를 방어하고 재정지출도 앞당겼다.)
"정치권이 똑같아서 그래요. 전문성이 없으면 입다물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런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입조심을 안 하니 그 밑의 전문가들이 아무 소리를 못 하잖아요. 거품이 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살려내라는 거 아녜요. 공무원도 그렇고 학자들도 그렇고. 하여튼 요즘에는 모든게 '포퓰리즘' 아니면 '폴리'(politics·정치)로 통하니 안 돌아가는 거예요."
-내년부터 실물경제 위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부실기업을 걸러내고 건전한 기업에 돈이 돌 수 있도록 해줘야죠. 미래 소비와 투자가 이뤄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정부는 신성장동력산업을 지원하고 규제를 풀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주고 취약계층을 지원해야 돼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수지 흑자를 확보하는 거예요. 국제수지 흑자로 외화 보유가 늘어나야 정부가 금리도 내릴 수 있고 재정도 더 풀 수 있어요. 정부가 자꾸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돈은 한바퀴 돌고 나면 사라지고 없어요. 돈 안 쓰는 일부터 찾아야죠."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지역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합니다.
"지방 산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수도권 규제부터 푼 것은 잘못했어요. 분명히 공약 위반이에요.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는 시급한 일이에요. 그러나 규제완화만 해서는 안 돼요. 외국기업은 안 들어오고 지방에 있어야 할 국내기업이 수도권으로 오는 효과밖에 없거든요. 큰 불행이죠. 지방도 문제예요. 예산을 배분하는데 거의 SOC(사회간접자본)만 들먹여요. 답답해 죽겠어요. SOC는 경제에 도움이 안 돼요. 옛날이면 노임 살포 효과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또 교통을 편리하게 한다고 장사가 됩니까? 경쟁력이 없으면 흡인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면 더 손해예요. 지방산업을 키우는 게 우선이죠. 잘 될 수 있는 산업을 연구하고 맞는 기업을 유치해야죠. 도로 뚫고, 운하 만들면 되는 줄 아는데 그건 재앙이에요. 재앙."
-한반도 대운하가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면 안 되고 될 수도 없어요. 낙동강만 하면 다른 지역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는 게 올바르냔 말이에요. 또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차리리 그 돈이면 장기임대산업단지를 만드는 게 낫죠. 50년간 거의 공짜로 빌려주는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특화산업을 키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강만수 장관이 물러나야 할까요?
"그건 뭐, 내가 말할 수 없잖아요. 알아서 하겠지 뭐."
-기획재정부 장관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나는 뭘 하겠다고 활동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뭘 해보겠다고 해서 된 것도 없어요. 공무원 할 때도 잘려서 공부하러갔고, 꿈에도 생각 안 했던 정치인이 됐고. 비례대표하고 그만두려고 했더니 느닷없이 대구로 내려가라고 해서 갔던 거고…."
-하려고 하진 않지만 굳이 마다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요?
"나라에 필요한 일은 해야 되지 않겠어요? 내가 진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대신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지."
◆대구, 경제에 가치를 둬라
-국회 예결위원장으로 대구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대구가 산업을 키울 예산에 관심이 없어요. 제일 큰 게 SOC예요. 그런데 SOC는 주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몰라요. 산업과 관련된 예산을 따려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다 자기 업계만 챙기려고 하고 장기적으로 대구에서 잘할 수 있는 산업이 뭔지 고민이 부족해요. 대구가 기업계에서는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그 이미지를 깨야 돼요."
-대구의 이미지가 도대체 어떤가요?
"대구 사람들이 참 별나고 까다롭다고 그래요. 외지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하고. 또 대구가 사실과는 다르게 노동운동이 굉장히 강한 걸로 알려져 있어요. 지역사회 차원에서 기업에 우호적이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경제자유구역이나 국가산업단지 지정, DGIST 착공 등 그릇이 만들어졌으니 알맹이를 뭘로 채울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죠.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훨씬 쉽게 예산을 딸 수 있거든요."
-앞으로 대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힘을 못써요. 기회도 안 돌아오고. 그런 걸 깨야 해요. 또 지금까지 대구가 우선 순위에 두는 가치가 경제가 아니었잖아요. 이제는 경제에 높은 가치를 둬야 해요. 경제가 활성화될 때까지는 기존의 가치관과 맞지 않더라도 참고 넘어갈 줄 알아야 돼요."
◆난 복잡하게 살지 않는다
-혹자는 의원님을 두고 경제학자 스타일이지 정치인 스타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둥글둥글 아무나 좋다고 하는 편은 아니에요. 무리지어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고. 나는 정책만 하기 때문에 계파에 속하면 오해를 많이 받아요. 정치인도 바뀌어야 해요. 정직성과 전문성을 갖춰야죠. 수요자인 국민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게 정치인의 책임이거든요."
-남들과 어울려 다니지도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데도 벌써 3선 의원입니다.
"저도 3선을 할줄은 몰랐어요. 지난 총선 때 공천받을 때도 대놓고 MB한테 싫은 소리를 하니까 다들 떨어진다고 그랬어요.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변화가 생기고, 그러면 따라가면 되잖아요. 제일 싫은 사람이 있는 자리를 이용해서 다음에 뭐가 되겠다고 행동하는 사람들이에요. 정직하지 못해요."
-경북고에 서울대 경영학과, 대학 2학년 때 공인회계사, 졸업하던 해에 행시 7회 재경직 수석을 했습니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인데 서민들의 삶을 잘 모를 것 같다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죠. 저는 그야말로 영세민 수준의 생활을 했어요. 고교 때까지 굉장히 가난했으니까. 아버지가 봉산시장에서 구멍가게를 빌려서 하셨으니 진짜 어려웠던 시절이었죠. 워낙 가진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어요. 공무원 할 때도 항상 가난하게 지냈어요.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59㎡(18평)짜리 서민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재무부에서 잘리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도 생활비가 없어서 참 힘들었죠. 보스턴대학에 갔는데 생활비가 없어서 1년 만에 캔자스주립대로 갔거든요. 제가 어렵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은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도움을 주면서 마흔살이 되어서야 겨우 안정이 된 거예요."
-지역구에서 이 의원을 보기 힘들다는 원성도 있던데요?
"예결위원장을 맡고부터는 잘 못 내려가요. 이게 보통일이 아니에요. 지난 총선 때도 당 정책위의장만 안 맡았으면 내려갔죠. 총선에서 당이 다수석을 확보하느냐가 달려있는데 나 당선되자고 내려가 있으면 일은 누가 해요. 자주 안 보인다고 안 찍는다면 안 하면 그만이죠. 또 지금 보수세력이 자리를 잡느냐 하는 중요한 판국인데 내가 여기서 놀고 있으면 모를까. 엄청나게 바빠서 코피가 터질 판인데요. 신경질이 나는 게 나는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걸핏하면 안 내려오냐는 사람이 있지 않나, 다른 지역을 자꾸 챙긴다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런 소리 들으면 힘이 쭉 빠져요."
-살면서 가장 후회해 본적은 언제입니까?
"글쎄요….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한 건 아쉬워요. 경제적으로 워낙 어려웠으니까. 재무부 과장을 할 때도 뒷돈 안 받고 월급으로만 사니까 참 어려웠죠. 대우그룹에 간 뒤에야 조금 잘해드렸지만 고생하신 거에 비하면…. 추운 겨울에 가게에 물건 내놓고 들이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후회스럽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이한구는?=1945년 대구 출생. 국회의원. 한나라당 내 대표적인 경제 브레인. 교수가 되기 위해 서울대 경영학과를 지원했지만 가난한 형편에 학비를 댈 자신이 없어 공무원을 선택했다. 서울대학 2학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1969년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 7회 재경직 수석을 차지했다. 재무부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사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옷을 벗었다. 동서인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이 '김종필 라인'이었던 탓이라는 게 본인의 설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캔자스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5년간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 일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함께 세계 경영 전략을 구상하고 정리했다. 2000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대구 수성갑에서 재선과 3선에 성공했다. 국회 상임위 예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