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돈 한푼이 아쉬운 요즘이다. 저마다 넘어가는 은행과 기업을 되세운다고 현금 확보에 혈안이다. 나라 차원에서 이런 모양새니 개인 사정은 더욱 팍팍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 도산 소식이 들려오니 "월급 좀 올려달라"고 주장하기도 영 마땅찮다. '깎지나 않고 자르지나 않으면 감지덕지' 심정이다. 그러자니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책장 서랍을 뒤지다 꼬깃꼬깃 숨겨둔 비상금을 찾아보는 것도 낙이 되겠다. 어디엔가 넣어뒀다 잊어버렸던 푼돈 찾는 재미도 요즘 같아서는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공중전화 사용 후에 전화기에 남아 있지만 통화할 수 없는 잔돈인 '낙전(落錢)'을 건지는 '횡재'와 같은 즐거움이다. 낙전은 생활 속에서 여기저기에서 생기지만 그 용처는 제각각이다. 다양한 낙전의 세계에 대해 살펴보자.
◆전화 사용시 낙전 수천억 규모
현재 공중전화 통화요금은 시내 3분을 기준으로 70원. 100원을 넣고 통화하면 30원이 남는다. 그러나 이는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다. 공중전화에선 10원 단위는 반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화자들은 남은 돈이 아까워도 그냥 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기는 낙전은 금액으로 한 해 10억원에 달한다.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 된 셈이다. 공중전화를 많이 써 본 사람이라면 동전 주입구 옆에 붙은 스티커의 문구가 기억날 것이다. '남은 돈은 초등학교 컴퓨터 지원사업이나 청소년정보윤리사업 등과 같은 공익사업에 쓰인다'는 내용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닌 것 같다. 이는 낙전을 관리하는 KT에서 표명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이와 관련 공중전화 낙전을 실제로는 KT가 가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KT 관계자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거나 낙전으로 생긴 수입이 무척 많으면 그렇게 하는데, 요즘은 적자폭이 너무 커서 그런 사업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보니 동전을 추가해 50원이나 100원 단위로 공중전화의 낙전을 돌려받는 방법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시에도 낙전은 생긴다. 통신사들이 통화요금을 10초 단위로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초를 통화한 사용자는 20초에 해당하는 요금을 물게 돼 있다. 실제 통화하지 않은 사용량에 대해서 돈을 내고 있는 셈. 휴대전화 이용자가 이런 식으로 지급하는 낙전 통화시간은 1인당 평균 5초에 해당한다. 이는 감사원이 지난해 10~11월 통신사업자 불공정행위 규제실태를 감사해 지난 6월 발표한 결과에 의한 것이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 이통 3사가 업체 간 접속통화료 산정은 1회 통화량을 0.1초 단위로 측정하는 것과 비교해 적정하지 않다고 했다. 이통 3사의 낙전 수입은 지난해에만 8천700억원으로 추정된다.
◆상품권·마일리지 낙전도 '꿀꺽'
백화점이나 주유상품권 낙전 이익 규모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이를 126억~26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3대 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의 상품권 낙전 수입이 113억~227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3사가 지난해 발행한 상품권 2조7천825억원에 상품권 평균 사장률(소실률)인 0.4~0.8%를 곱한 것이다. 상품권 판매 규모가 본격 집계된 2003년부터 계산하면 그간 상품권 시장 규모 10조5천590억원 가운데 3사가 챙긴 금액은 적게는 422억원, 많게는 844억원에 달한다. 정유사의 경우 연간 발행 상품권 4천600억원에 정유업계 추정 상품권 사장률 0.5~0.8% 수준인 23억~37억원이 연간 낙전 수입으로 잡힌다. 상품권법이 폐지된 이후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유사들의 상품권 낙전 수입은 184억~29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항공사들도 낙전 수익을 챙긴다. 국내 양 항공사의 적립 마일리지 충당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2천531억원. 여기엔 항공사가 카드사에 돈을 받고 판매하는 제휴 마일리지와 항공사가 자체로 적립해 준 탑승 마일리지가 합쳐져 있다. 이 중 제휴 마일리지로 국내 카드사가 지급하는 금액은 연간 1천500억~1천800억원이다. 그런데 고객이 사망하는 등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사용 가능성이 적은 경우 이는 고스란히 항공사의 잡수익으로 처리된다. 특히 지난 7월 1일부터 마일리지 사용기간이 5년으로 제한되면서 낙전 규모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렇게 고스란히 회사의 이익으로 잡히는 낙전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엄밀하게 보면 낙전 수익은 고객의 돈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돌려주거나 공익활동을 위한 지원금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관련 회사들은 "장부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아예 관련자료 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다.
◆투명하게 사용되는 휴면예금
이에 비해 휴면예금의 용도는 투명하다. 은행 및 저축은행의 요구불예금, 저축성예금 중에서 관련 법률에 의거 소멸시효(은행예금 5년, 우체국예금 10년)가 완성된 이후에 찾아가지 않은 예금이 휴면예금이다. 보험계약이 해지 또는 만료된 이후 2년의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은 환급금·보험금인 휴면보험금도 있다. 은행이나 보험사들은 그동안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휴면예금을 은근슬쩍 잡수입으로 처리해 왔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연체된 대출금을 끝까지 받아내려고 하는 집요함과는 다른 태도였다. 최근에야 휴면예금 찾아주기 서비스가 강화됐다. 그만큼 원주인의 권리 찾기 사례도 많아졌다. 올해도 지난 1월 7일부터 2월 4일까지 한 달간 휴면계좌의 금액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사를 펼쳤다. 이중 약 1천600억원이 주인을 찾았다. 행사 이후 휴면계좌에는 2천11억원(2008년 3월 현재)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휴면예금은 '휴면예금관리재단의 설립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이하 서민재단)의 밑천으로 쓰이고 있다. 서민재단은 지난해 8월 시행된 '휴면예금관리재단의 설립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지난 4월 22일 설립됐다. 서민재단은 이에 따라 휴면예금의 예금자를 보호하고 서민생활의 안정 및 복지 향상을 도모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민재단에 출연된 휴면예금은 출범 당시 3천820억원이다. 서민재단은 이를 소득 및 신용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취업 지원 사업 ▷교육·의료비 등 생활안정자금 지원 사업 ▷금융채무 불이행자 신용회복 지원 사업 ▷마이크로인슈어런스(Microinsurance: 저소득층 보험계약 체결·유지)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