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이 품은 '로봇의 꿈' 어디까지 왔나?

만화와는 다른, 현실 속 로봇이야기

'역대 만화영화 주인공 로봇 중에 최강은 누구일까?'라는 물음에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전설거신 이데온'을 꼽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행성을 두 조각 낼 정도라고 하니 다른 로봇은 명함도 못 내밀 것같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태권V'가 있고 고유성 화백이 만든 '로봇 킹'도 있다. 그나마 이데온에 비해 현실적이라고 할 듯. 거대 로봇의 꿈은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에게 태권V가 실제로 있다면 나쁜 나라를 혼내줄 텐데라며 낄낄거리던 어린 시절의 꿈은 어느 정도나 실현 가능할까. 거대 로봇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거대로봇의 꿈

서기 2050년 지구 정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카프 박사와 헬 박사 일당은 서로 힘을 합쳐 전 세계를 자신의 무릎 아래 굴복하게 만들려 한다. 로봇 군단의 파상공세 앞에 지구의 운명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내몰린다. 20세기까지 지구를 지키던 독수리 오형제도 나이가 들어 은퇴한 마당에 딱히 믿을 수 있는 지구방위군도 없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우리의 로봇 태권V.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붕을 뚫고 나타났건 한강을 가르고 솟아났건 상관없다. 태권V의 등장으로 로봇 군단의 공격은 잠시 주춤하지만 이내 수적 열세에 놓이고 만다. 그래서 긴급 호출한 것이 이웃나라 일본의 마징가Z. 하지만 제트 스크랜더를 달고 순식간에 날아온 마징가Z는 여지없이 기대를 무너뜨리고 만다. 태권V 옆에 나란히 선 마징가Z의 크기는 18m밖에 안 됐다. 신장 56m를 자랑하는 태권V의 3분의 1도 채 안 되는 마징가Z는 결국 변변히 전투도 제대로 치러 보지 못한 채 납작해졌다나. 이후 지구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철인28호도 있고, 그로이저X, 로봇 킹까지. 이후에 지구를 지킨다며 지구인이 개발했거나 외계에서 날아온 로봇들이 꽤 많다 보니 어디선가 날아와 로봇군단을 물리쳤을 수도 있겠다. 뒤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로봇 군단이 파괴한 시설보다 로봇끼리 전투를 벌이다 부순 시설이 더 많다던가.

'로봇'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 인류는 거대 로봇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올해 나이가 만 36세가 되는 마징가Z는 이런 맥락의 원조격이 되겠다. 이후 태권V를 비롯해 건담을 거치면서 크기는 다소 달라졌지만 인간처럼 두 다리로 걷는 거대 로봇은 인류가 꿈꾸는 미래 로봇의 원형이 됐다. 거대 토목공사에 쓰이는 중장비를 보면 덩치 큰 로봇의 꿈이 가능해 보이지만 인간을 닮은 이족 보행 로봇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 등장한 가장 큰 로봇은 1985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맥기 교수가 개발한 ASV. 다리는 6개가 있었고 무게는 3t에 이르렀으며, 사람이 직접 타고 조종했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너무 둔한 탓에 실용화에 실패했다. 현재 개발된 이족보행 로봇 중 가장 첨단은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 120㎝ 크기에 몸무게는 43㎏.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개발한 휴보 FX-1은 키는 같고 무게는 55㎏이다. 마징가Z처럼 18m 크기로 커진다면 중량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2003년 일본 초대형 토목건설회사인 마에다건설은 '마징가Z 지하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벌였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기지의 설계도를 만들어 보는 것. 이때 마징가Z의 몸무게는 20t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실제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몸집이 커지면 무게는 키의 세제곱에 비례해 증가한다. 1.8m인 성인의 몸무게를 80㎏으로 볼 때 18m가 되면 8만㎏, 즉 80t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비중이 훨씬 큰 금속 소재로 만드는 로봇의 중량은 이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덩치가 커지면 아시모나 휴보보다 훨씬 견고한 재질로 몸체를 구성해야 무게를 견딜 수 있고, 그만한 무게를 견디고 이동하려면 훨씬 큰 동력원이 필요해진다. 거대한 빌딩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태권V는 가능할까

몇해 전 '과학동아'는 태권V 10대 기술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국내 로봇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태권V의 기능을 갖추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아보았다. 태권V의 키에 대해 20~100m까지 다양한 설이 있었지만 태권V를 제작한 김청기 감독의 주장대로 '56m'를 채택했다. 휴보의 키와 몸무게로 산출한 태권V의 무게는 무려 5천600t. 훨씬 가벼운 첨단 소재를 채택했다는 가정하에 무게를 4분의 1로 줄여 1천400t으로 잡았다. 남은 작업은 18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로봇이 자유롭게 비행하고 뛰고 공중제비를 넘고 로켓주먹을 발사하고 가슴에서 광자력빔까지 발사하도록 기술을 접목하는 것. 현재 가장 발달된 이족보행 로봇인 아시모조차 시속 6㎞로 달려가는 흉내만 낼 뿐이다. 만화처럼 레버를 당기고 단추를 누르는 식으로는 로봇을 조정할 수 없다. 조종사 훈이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어내 태권V의 동작에 접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훈이가 로봇에 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뛰고 날고 구르는 동작을 하고, 외부에서 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내야 하는 로봇 몸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원격으로 조정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태권V의 발바닥에 로켓 추진체를 달면 일정 시간 비행하는 기술은 현재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초대형 로켓 추진체를 설치했을 때 비행시간은 고작 3분 정도. 로봇 군단과 공중전이 벌어지면 3분 만에 적을 제압하고 지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셈이다. 로켓 주먹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정밀 비행제어시스템과 다시 팔에 돌아와 붙도록 만들기 위한 역추진 엔진도 필요하다. 가슴에서 발사되는 광자력빔은 일종의 레이저. 하지만 아직 상대 로봇의 몸체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정도의 강력한 레이저는 개발되지 않았다. 레이저를 발사하는 태권V의 가슴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도 핵심이다. 인간은 주변 사물을 보고, 듣고, 냄새를 맡아서 인식하지만 로봇은 그렇지 못하다. 기껏해야 레이더 정도. 게다가 복잡한 태권 동작을 하면서 혼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고도의 평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몸체의 재질은 어떨까? 태권V는 절대로 몸이 찢어지거나 깨지지 않는다. 게다가 정권으로 상대 로봇을 부수기도 한다. 금속 재질의 로봇에게서 이런 강도와 탄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방탄복으로 개발 중인 탄소나노튜브 같은 소재를 이용해 태권V 전신에 입히는 방법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초열광선으로 공격해 오면 속수무책이다. 아직 태권V를 개발할 재질은 상상 속에 존재한다.

태권V의 에너지원으로서 가장 근접한 것은 핵융합 발전. 키가 56m인 태권V의 심장 역할을 하려면 핵융합 발전로 크기는 지름 3~4m, 높이는 10m를 넘지 않아야 한다. 발바닥에 로켓 추진체 대신 핵융합 에너지를 사용하는 추진체를 만들면 공간과 무게를 훨씬 적게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핵융합 자체의 핵심 기술조차 미개발 상태인데 로봇의 심장만큼 작은 핵융합로를 만든다는 것은 갈 길이 먼 미래 이야기가 되겠다. 태권V가 태어난 1976년만 해도 21세기 초에 현실이 될 줄 알았지만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할 듯.

◆군사로봇의 세계

만약 전투용 로봇이 개발된다면 태권V나 마징가Z와 같은 인간형 로봇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겉모양만 그럴듯해 보일 뿐 실제 전투에서 인간형 몸체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만화영화 '인크레더블'에 등장한 문어형 악당 로봇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다리가 여러 개여서 중심을 잡기도 편하고 울퉁불퉁한 지형도 쉽사리 넘나들 수 있다. 미사일에도 끄떡없는 재질과 슈퍼 영웅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는 막강 전투력, 게다가 가공할 만한 학습력을 통해 매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강해진다. 만화영화뿐 아니라 실제 이라크전에서도 정찰용 로봇이 투입됐고, 현재 자율적으로 적을 인식해서 파괴하는 대전차 미사일을 갖춘 무인형 전차 로봇이 개발 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전투형 로봇의 덩치가 태권V나 마징가Z처럼 커질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경향을 보인다. 바로 나노로봇, 즉 초소형 로봇이 전투형으로 개발되고 있다. 지난 8월 영국 국방부가 솔즈베리에서 개최한 군사기술 경연대회인 '그랜드 챌린지'에는 전체 11개 참가팀 중 3개 팀이 나노로봇을 선보였다. 작은 곤충로봇들이 땅에서 움직이는 '마인드시트(Mindsheet)', 날아다니는 비행로봇들이 모인 '로커스트(Locust)' 그리고 소형 헬리콥터 8대로 이뤄진 '아울스(Owls)'. 이런 나노로봇들은 임무 수행을 위해 떼로 지어다닌다는 점이 특징. '아울스'는 소형 헬리콥터 8대가 한 팀이 돼 움직인다. 로봇 1대당 프로펠러가 4개씩 달려 있고 무게는 1㎏이 안 된다. 아울스는 다양한 각도에서 고해상도 영상을 찍어 적의 위협을 감지하며 대기에 뿌려진 독성물질도 탐지하는 기능도 갖췄다. 만약 8대 중 일부가 파괴되거나 고장이 나더라도 나머지 헬리콥터가 임무를 대신하도록 프로그램이 입력돼 있다.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우드 교수팀은 0.06g짜리 극소형 파리로봇을 개발 중이다. 물론 살충제에도 끄떡없고 인간 병사가 접근할 수 없는 생화학무기 오염지역도 탐지할 수 있다. 탄소섬유로 만든 길이 3㎝의 날개가 달려 있으며 실제 파리 날개와 비슷하게 초당 150회 움직이며 날도록 설계됐다. 나노로봇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문제도 초소형 고효율 나노전지를 통해 해결된다. 포도당 같은 탄수화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연료전지를 쓸 경우, 곤충로봇은 근처 나뭇가지에 전지만 꽂으면 포도당 원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전투 로봇은 그저 만화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한 채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은 무차별로 상대를 파괴한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의 3대 원칙을 만들면서 제1원칙에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지만 인류는 전투형 로봇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로봇이 자신을 해치게 될지도 모른 채.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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