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대부(1977)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I will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대부 말론 브란도가 웅얼거리듯 내뱉는다. 얼굴에 표정도 없다. 일상처럼, 무심하게 그렇게 말한다. 과연 어떤 제안일까.

꼴레오네 집안이 밀어주는 배우가 있다. 중요한 영화에 캐스팅이 되지 않자 대부에게 사정한다. 양자이자 변호사인 톰(로버트 듀발)이 파견된다. 그러나 영화제작자가 거절한다. 톰이 떠난 후 호화로운 저택에서 잠을 자던 제작자가 놀라 깬다. 이불 속을 젖히자 자신의 애마(愛馬)의 목이 잘린 머리가 있다. 이어지는 비명소리, 그리고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영화 '대부'를 관통하는 대사다. 엄청난 힘이 묻어난다. '죽이겠다'는 말보다 훨씬 더 진한 폭압이 느껴진다.

한때 필자는 꼴레오네를 흠모했다. 꼴레오네보다 그의 힘을 흠모했고, 그런 힘을 가진 아버지를 원했다. 남의 등쌀에 휘둘리며, 애꿎은 새마을 담배만 피워대며 속 태우는 아버지가 아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했다. 물론 어린 마음에서다.

'대부'는 미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걸작이다. 1900년대 초 미국 이민사와 그들이 그물코처럼 미국이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고난사가 담겨 있고, 공황기 고단한 삶과 그럼에도 살아 존재해야 하는 인간사 대명제까지 담아내고 있다.

시인 노태맹은 메타세쿼이아 키 큰 숲 속에 있는 '그'를 그렸다. 어둠의 거래를 가을 숲의 색깔로 이미지화하고, 키 큰 나무처럼 단단한 현실 속에서 흰 달의 정수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대부의 고독한 모습을 비극적 서정성으로 그려냈다.

영화의 외피는 차갑다. 음모와 배신, 죽음과 복수의 순환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속에 더 뜨거운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넓게는 조직원이란 뜻의 패밀리, 작게는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다. 그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야 하는 운명공동체이다.

'대부'는 극단적이고, 야수적인 한쪽과 감정적이고 운명적인 한쪽이 서로 대척하다가 녹아들고, 배신하다가 포옹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버지의 뒤를 이은 마이클(알 파치노)이 조카의 대부가 되는 장면이다.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마이클이 누이 코니(탈리아 샤이어)의 아들 세례식에 참석한다. 그가 조카의 대부가 되는 순간, 밖에서는 끔찍한 피의 보복이 벌어진다. 그의 앞을 가로막던 라이벌 조직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해가 이어진다. 총구에서 불이 뿜고 피가 튀는 죽음의 향연 속에 그는 태연하게 신을 믿고, 신의 품속에 귀의한다.

엄청난 아이러니다. 죄를 짓지 않겠다고 신에게 서약하는 순간, 그는 죽음의 신이 되어 칼날 위에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탄생이 한 프레임 속에서 절묘하게 배치된 장면이다.

화가 권기철은 암흑을 선택했다. 거칠고 검은 캔버스는 '어둠의 힘'이 작용하는 암흑가의 바탕색이다. 그 속에 가족의 연대기가 흐른다. 한쪽에서는 배신한 형제를 죽여야 하는 피가 뿌려지고, 또 한쪽에서는 초록빛 희망과 노란색 사랑이 피어난다. 아내 케이(다이앤 키튼)와의 사랑, 아들 안소니에 대한 기대, 그리고 참인간으로 살고 싶은 마이클의 순수성들이 아닐까.

그러나 마이클은 결국 암흑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피아라는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을 가고, 2차대전에도 참전했지만 결국 그의 손에는 화약이 묻고 만다. 총탄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힌 꼴이다.

그래서 캔버스의 검은 바탕은 인간의 운명처럼 어둡고 암울하고, 작품 제목 'NO !!!'는 그 절규처럼 들린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대부(The Godfather, 1972)

감독: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제임스 칸, 다이앤 키튼

러닝타임:175분

줄거리:1947년 미국. 이탈리아인 돈 꼴레오네(말론 브란도)는 어둠의 '대부'(代父)이다. 그는 9세 때 가족이 모두 피살당하고 미국으로 피해 범죄 조직에 발을 담그게 되어 이제 미국 마피아의 중요 인물이 된다. 어느 날 라이벌 패밀리에게 저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막내아들 마이클(알 파치노)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이탈리아로 피신한다. 그후 시골 아가씨와 결혼하지만 상대 조직의 집요한 추적으로 아내를 잃고, 미국에서는 장남 소니(제임스 칸)까지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조직은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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