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일본의 친구에게

"역사의 현실에 우정이 아픕니다"

▲ 서도 물골 계단공사가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공사 인부가 60㎏이나 되는 조립용 철골프레임을 지게에 지고 경사각이 70도 가까이 되는 어업인숙소 뒤쪽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서도 물골 계단공사가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공사 인부가 60㎏이나 되는 조립용 철골프레임을 지게에 지고 경사각이 70도 가까이 되는 어업인숙소 뒤쪽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수년 전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나카니시(왼쪽)씨.
▲ 수년 전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나카니시(왼쪽)씨.

나카니시 마사카츄(中西政和) 선생님께 드립니다.

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오사카성 천수각 주변의 벚나무 잎들은 이미 떨어졌겠지요. 한큐(阪急)백화점 앞을 걷는 행인들도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치겠군요. 여여(如如)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무라(中村)내외분, 스즈키(鈴木), 다다(多田), 마리 씨 친구분들 두루 잘 계시는지요?

이곳 고도(孤島)는 물결이 높아 오가는 사람 발길이 끊겨 요즘 더욱 적막합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니 동(東)오사카 초밥집에서 선생님과 함께 먹었던 북해도 털게탕과 따끈한 청주(정종)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지난 10여년을 하루같이 교유해오면서 이렇듯 오랜 기간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낸 적은 없었지요. 제가 서신왕래가 불편한 외딴 섬에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나카니시 선생님의 '말하기 힘든 무안함' 때문이란 것,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제가 독도로 들어오기 사흘 전이었던가요. 선생님의 두번째 서울 도자기전시회 개막식을 마치고 인사동 삼겹살집 뒤풀이 때, 제가 독도로 간다는 말을 듣고 일순간 얼어붙던 선생님의 모습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일년에 적어도 두세번은 한국을 꼭 왔고, 저보다도 한국 친구가 더 많으며, 조선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웬만한 학자 못지않은 선생님이시기에, 저의 독도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아셨겠지요. 우리가 만나 같은 밥상에 머리를 맞대고 수저질을 하고, 술잔을 맞부딪치면서도 서로 '말없는 말'로써 교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두 나라 간의 문제 때문이란 것을….

그동안 선생님은 아픈 역사에 대해 '속 깊은 정성'으로 사죄하고 저는 이심전심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소시민의 그런 처절한 몸짓에도 '침략해온 일본'과 '방어해온 한국' 국민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독도문제가 책 속에 묻힌 과거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에야…. 그때문에 침략을 받아온 입장에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내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저의 현실인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으로부터 1천700여년 전 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왕(昭王)시절 재상 범수가 말한 '원교근공(遠交近攻)' 외교책략을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금과옥조로 여기는 듯합니다.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여 한 치(寸)의 땅을 얻으면 한 치가, 한 자(尺)의 땅을 얻으면 한 자의 땅이 내 것이 되지만, 천하를 평정하더라도 먼 나라는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한다는 책략 말입니다.

해서, 일본과 같은 물에 빨래하는 처지인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나 이 땅을 노리는 이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유사 이래 역사서마다 왜구의 침범을 적지 않은 구절이 어디 있으며 그 피해를 걱정하지 않은 문장이 어디 있습니까? 멀리는 신라 이후, 가깝게는 36년간 국권을 잃은 기간까지, 우리 민족은 이웃 하나 잘못 만나 끊임없는 침범의 괴롭힘을 당해야 했습니다.

독도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실효 지배적 측면에서나 한국의 땅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세계무대에서 경제적, 외교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 땅을 빼앗으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우리의 이런 논란이 80, 90% 일본인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은 독도문제를 이솝우화 개구리에 돌 던지는 것과 같이 '아니면 그만이고'식 행태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네들은 틈만 나면 '꽃놀이 패' 쓰듯 툭툭 건드려보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민족의 자존과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는 지금 두 국가권력이 부닥치는 톱니바퀴 가운데 짓이겨지는 우리의 우정을 안타까워하고, 우리관계가 왜 불편해야 하는지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이 시대에 끝났으면 하는 발원이 이루어지길 빌고 있습니다.

저의 속마음을 풀어놓고 나니 조금은 후련합니다. 제가 다시 일본을 갈 수 있다면, 우리가 즐겨 찾았던 오사카 불고기집 '해남정(海南亭)'에서 우리만의 제조술 포도주 '혼합주'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건승하십시오.

2008년 11월 19일 독도에서 전충진 드림.

※ 이 글은 전충진 기자가 일본 도자기 취재 인연으로 만난 일본 동(東)오사카의 '아사히 야끼(朝日窯)' 문하 도예작가 나카니시 마사카츄(中西政和) 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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