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의 4조원대 다단계 사기사건은 경찰의 미온적인 수사와 투자자들의 '본전 챙기기' 심리 때문에 피해규모를 더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기를 구입하면 고배당을 준다'는 이 업체의 사기행각은 이미 1년여 전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졌고 경찰도 여러 차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데다 투자자들도 피해 사실을 쉬쉬하며 숨기는 바람에 결국 수만명에게 피해를 입히는 대형사건으로 커졌다.
경북 영주경찰서는 지난 4월 '(주)첼린씨'라는 업체에 돈을 넣었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한 투자자의 진술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주)첼린씨는 이번 사건의 주범인 조희팔씨가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운영하던 다단계 업체의 지역 법인 중 하나다. 경찰은 제보를 근거로 부산을 비롯해 이 법인의 영남권역 13개 센터를 수사, 센터 대표 K(59)씨 등 44명을 입건했고 피해자 1만5천여명에 피해액 3천900여억원임을 밝혀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경찰이 업체의 거래계좌를 정지시켰지만 투자자들은 이 업체가 만든 또 다른 계좌에 돈을 투자했다. "지금 터지면 하나도 못 건진다. 잃은 돈을 뽑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투자자 대부분은 인근 지역 센터로 옮겨 또다시 돈을 끌어들이고 하위 투자자를 모았다. 이달 초 모(母) 업체의 대표가 잠적하고 사기 전모가 드러나면서 더 큰 피해를 보게 됐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경찰관은 "피해자라고 나서는 투자자는 없었고 오히려 경찰이 끼면 판이 깨질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며 "'첼린씨'라는 업체가 이번에 대구를 중심으로 터진 4조원대 사기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당시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구 성서경찰서도 지난해 11월 달서구 이곡동 '(주)티투'라는 업체가 의료기기 대여업을 빌미로 불법 유사수신 행위를 한다는 언론 보도(본지 2007년 11월 6일자 보도)를 근거로 내사에 착수했다. 이 업체 역시 조희팔씨가 운영하는 하위 법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이 업체를 찾아갔던 경찰은 투자자들이 "사기당한 일없이 배당금이 잘 들어오는 데 경찰이 왜 나서냐"고 막아서는 통에 면박만 당하고 돌아섰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의 수법이 '시한폭탄 돌리기'가 분명했고 피해금액이 수천억원으로 추산됐지만 모두 감추는 바람에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기억했다. 경찰은 원금과 함께 배당금을 준다는 투자 계약서를 확보하지 못해 유사수신 행위로도 단속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첼린씨' '티투' 등의 사기행각은 이미 지난 4월 금융감독원에 감지돼 수사당국에 통보됐지만 경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 안응환 유사금융조사팀장은 "대구경찰청을 비롯해 부산과 인천경찰에 '다단계 업체의 범죄 혐의가 있다'며 통보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는 동안 이 업체는 4년여간 10여 차례나 법인 명칭을 바꿔가며 불법 행위를 계속, 사상 최대규모의 다단계 사기 피해를 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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