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에 불황의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한 화랑운영자는 '내년 1월 이후 전시도 다 없애고 납작하게 엎드려 2년만 참고 기다려 보자는 생각 중이다'고 했다. 또 한국화랑협회 정종효 사무국장은 '144개 회원화랑 중 약 10~15% 정도만 겨우 영업을 하고 있고, 그 나머지 회원 화랑들은 거의 고사직전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서울 청담동에서는 이화익갤러리, 인터알리아청담점등이 최근 철수했다.
작년의 경우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4천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자랑했고 미술품이 마치 재산증식의 대표적인 수단이 되는 것처럼 너도 나도 뛰어들기 시작했다.(표 참고) 하지만 세계경제위기와 국내경기침제로 국내미술시장 역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이 내실 있고 건전하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련은 겪여야할 통과의례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해외에서 배운다.
세계미술시장은 1990년대 불황을 경험했다. 어떻게 미술계가 그 불황을 통과해왔는지 살피는 것도 지금 국내시장에는 유효할 것 같다. 1990년 세계미술시장은 한 일본인 사업가가 반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천문학적 가격을 주고 구매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1980년대 미술마켓이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동시에 미술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일본인 컬렉터가 이작품을 구매한 액수는 무려 8천250만달러(현재기준 약 1천300억원). 이 액수는 크리스티 옥션 총판매금액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0년 니케이지수가 붕괴되면서 일본컬렉터와 앤화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미술계의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1990년 11월 크리스티 경매는 6개월 사이에 판매 금액이 3분의 1로 줄었고 이어서 10분의 1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국시장과 흡사하다.
그런데 1992년부터 새로분 분위기가 서서히 미술시장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의 침체기간을 지나서 였다.퀄리티를 높이고 신선한 작품이 옥션에 나오면서 이런 작품들이 좋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다. 투기세력이 미술시장에서 빠지고 현명한 컬렉터들이 적극적으로 고가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옥션 낙찰률이 높아졌다. 활황분위기는 1994년과 1995년에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었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크리스티 옥션의 프랭크 기라우드는 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소로 다음을 지적했다. ▷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거래하면서 높은 낙찰률과 낙찰가유지▷전문적인 정보 제공을 통한 고객의 신중한 선택 유도▷ 고객의 취향파악과 변화하는 욕구를 반영하는 옥션 구성▷ 테마가 있는 옥션 구성▷ 작품에 대한 온·오프라인 정보공개▷ 유명인들의 소장품 판매 등으로 일반인 관심유도 등이다.
또 이들은 불황을 통해 드러난 미술시장의 시스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갖추어야 하는 상도덕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통해 판매시스템. 작가관리시스템 그리고 작품구매시의 주의점들이 안정적인 상태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2006년 가을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은 다른나라가 4, 5년간의 호황을 누린 반면 우리는 저변확대의 부족,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미술계의 스캔들, 제한된 작가에 대한 집중현상, 관세문제, 작은 시장규모로 인해 짧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미술계 안팎에서는 동아시아 미술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한류열풍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이 내실 있고 건전한 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몇년 사이 한국미술시장은 30, 40대 금융권과 의사 변호사 등 젊은 신흥 컬렉터들에 의한 자본의 논리와 펀드자금의 힘으로 성장하였다. 김태곤 대백갤러리 큐레이터는 "최근의 불황은 이런 묻지마 투기세력이 제거되고 투자에 주춤하고 있던 토종 컬렉터들이 투자에 나서기 좋은 분위기"라고 했다. 즉 그림값이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투기적 성향의 구매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현명하고 교육된 컬렉터들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간다는 것이다. 이들의 장기적인 투자와 정부의 예술적인 지원이 병행되는 미술구조를 갖춘다면 그림시장의 미래는 그렇게 암울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또 이 기회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화랑들이 정리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화랑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이중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던 중견 원로작가들의 작품 역시 하향조정되어 새로운 거래방식의 유통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화랑 역시 미술품에 대한 과세철폐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객과 작가를 우선으로 하는 미술시장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작품 진위에 대한 명쾌한 자료나 데이터 관리 등을 통해 미술품 유통에 따른 시스템을 화랑협회와 미술협회 차원에서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순재 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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