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시청하는 TV드라마가 있다. 인데, 스승인 단원이 묻는다. "그림이 무엇이냐?" 신윤복이 대답한다. "그림이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니 마음이 그리워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입니다."
그림 선생은 편하지 않으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그림은 저 혼자 저 그리운 것을 찾아서 그리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개성만 두드러진다면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잣대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또한 현대미술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모두 자기 그림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다른 화가의 그림을 잘 인정하지도 않아서 독불장군도 많다.
그런데 막상 화가로서가 아닌, 선생의 입장에서 그림과 마주하면 이 '잣대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여간 모호하고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 사이에 끝없는 긴장이 오간다. 자유 때문에 오히려 참 불편한 선생이 바로 그림 선생인 것이다.
11월에 미술대학 4학년 학생들은 졸업전시회 준비로 여유가 없다. 졸업 전이라는 부담감에 짓눌려 외부적인 눈치를 보게 되고, 막판에 갈팡질팡하는 학생도 더러 생긴다. 추상을 하다가 돌연 구상으로 바꾸고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뀔 때도 있다. 한밤중까지 불 켜져 있는 실기실이지만 오늘은 텅 비어있다. 낙엽을 주워 오라고, 11월을 전송하자고, 내가 학생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몰았었다. 지금 교정엔 은행잎이 구르고, 온갖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몰려다닌다. 졸업반 제자들의 스산한 마음도 함께 뒹군다. 나뭇잎을 줍게 한다고 새삼 무엇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집중력을 환기시키고, 저 자신의 그리움과 창의력의 주파수를 되찾아서 마지막까지 작품에 올인해 줄 것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11월은 일년 중 가장 속절없는 달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이 '그리움에 져주자'며 가을을 노래한 시에 가파른 마음을 잠시 기대어 본다.
..... 가는 길 갈수록/ 가슴 설렐 일 드물 것인데/ 가는 길 어느 새 가파르다/ 지는 노을 산 그림자/ 한점씩 어둠의 푸른 데로 옮겨 앉는다/ 이 밤 한 번 그리움에 져주자/ 나 아직도 나에게 들킬 일 남아 있는가/
밤이 길어진 11월은 추억하기에 좋은 달이다. 설령 내가 나에게 들킬 일 있다한들 무에 그리 부끄러운 일 남아있겠는가. 백미혜(시인·화가·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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