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지컬 맘마미아 대구 공연 '열기 가득'

20일 대구계명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한국어판 맘마미아'의 막이 올랐다. 갑작스런 한파 탓에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웅크린 모습이었다. 쌀쌀한 날씨와 달리 공연장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그룹 '아바'의 노래 때문일 것이다. 여느 뮤지컬 공연과 달리 '맘마미아' 공연장에는 중년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발랄한 아가씨와 겸연쩍어 하는 신사들도 눈에 띄었다. 널찍한데다 밝고 화려한 객석,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암시하는 무대막은 공연시작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공연장을 압도하는 전자사운드는 아바 음악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특수 조명은 관객을 단숨에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으로 이끌었다. 계명아트센터의 높고 둥근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물방울 무늬의 레이저 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한국어로 번안된 아바의 노래는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마이크가 불완전하기도 했지만, 별 흠이 되지 않았다. 우리말 노래와 대사는 극의 흐름 뿐 아니라 사소한 농담이나 위트까지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외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은 자막과 무대를 번갈아 살펴야 하는 까닭에 놓치는 부분이 많다.)

'맘마미아'의 주요 등장인물은 엄마와 딸, 딸과 그녀의 약혼자, 엄마의 옛 연인 세 사람이다. 엄마 도나의 여자 친구와 세 명의 옛 연인들, 그리고 딸 소피의 동네 친구들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극 뼈대의 여백을 촘촘하게 채워준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스무 살의 소피는 결혼을 앞두고 아빠를 찾고 싶어한다.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들춰보는 금기를 자행하며 엄마의 과거를 알아낸다. 자신의 생부일지도 모를 세 남자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소피는 간절하게 부성을 원한다. 일렉트라 콤플렉스가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그리스의 작은 섬, 한적한 모텔이 배경이다. 자못 단순하고 정적일 수 있겠지만, 열정으로 들끓는 스무 살 청춘들이 벌이는 수다와 활기찬 퍼포먼스, 모텔의 외벽을 스피디하게 전환시키는 무대장치는 극을 살아 꿈틀대게 한다.

아빠를 찾아 헤매는 소피는 작은 체구에 나이보다 어려보였다. 숨 가쁘게 무대를 뛰어다니다가 혹시 빠르게 전환하는 무대에 끼이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도 한다. 그런 안타까움이 오히려 결혼을 앞두고 아빠를 찾으려는 딸아이의 간절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결혼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라는 사회적 통념은 그리스나 우리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20대의 미혼모였던 도나가 떠안아야 했던 모성의 역할, 자신의 부모와 의절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도나. 이 역할을 이태원은 굵은 목소리와 강한 인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도나가 떠난 연인에 대한 원망과 인생에 대한 회한을 담아 부르는 'The winner takes it all'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태원의 놀라운 가창력과 풍부한 감정은 버림받은 소외감과 오래 묵은, 그러나 지금도 유효한 분노를 생생하게 분출해내고 있었다.

2막의 소피의 몽환적인 꿈속 장면은 주제의 은유적 표현이다. 구명조끼와 스노클을 한 친구들과 세 아빠가 그녀의 침대를 어지럽게 끌고 다닌다. 넘실대는 지중해, 잠수 장비들, 양수로 가득 찬 어머니의 자궁, 가장 평화로웠던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섬의 앞바다에 떠 있는 배. 섬과 배. 여성과 남성의 비유다. 열렸다 닫히는 무대장치 또한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한다. 그래서 뮤지컬 '맘마미아'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엄마에 대한 원망에 차있던 소피는 꿈을 꾼 후로 달라진다. 반드시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겠다는 그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겠다고 선언한다. 모녀의 화해는 딸을 둔 이 세상 어머니들에게 깊은 위로를 선사한다.

엄마의 친구인 타냐역의 전수경, 로지역의 이경미의 능청스런 연기는 재미를 더한다. 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중년의 신체적 변화에 대응하는 두 여자의 상반되는 태도는 코믹하게 중년기 여성들의 심정을 파고들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반면 세 남자들에게서는 남자다운 면모를 찾기가 어렵다. 감정에 휘둘리는 인디아나 존스 빌, 자신이 동성애자임 뒤늦게 깨닫는 해리, 그리고 도나를 사랑했지만 자존심과 두려움 때문에 떠나버린 샘. 하나같이 감성적이고 우유부단하며 수동적인 중년기 남성의 심리를 그린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소피가 약혼남 스카이의 손을 잡고 '나는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무대 한 쪽에 머물러 있던 달이 완전한 보름달이 되어 무대를 꽉 채운다. 서양의 보름달은 불길한 징조지만, 동양에서는 소원성취와 희망의 메시지다. 밤하늘에서 보던 달과 너무나 닮아있는 이 달님은 그리스 섬을 넘어서 성서 계명아트센터까지 환하게 비추면서 모녀간의 화해, 세대 간의 조화, 남녀간의 사랑의 메시지를 오래도록 비춰주고 있었다. 달을 저토록 달답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놀라움을 금하기 힘든 달이었다.

▶공연안내=∼12월 31일/계명아트센터/VIP석 12만원, R석 10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B석 5만원, C석 4만원/1599-1980.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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