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은 영남을 그 밖의 지방과 갈라 놓는 산줄기다. 호남과 통하려면 서쪽으로 대간을 넘어야 하고, 기호지방을 오가려면 북쪽으로 그걸 넘어야 한다. 김천의 '추풍령'은 그렇게 백두대간을 넘는 상징적 고개다.
하지만 추풍령이 부상한 건 주로 1970년 7월의 경부고속도 개통 이후다. 그 이전 서울 가는 중요 관문은 '이우릿재'였다. 1925년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이화령'이라 이름 붙였던 그 고개다. 그러나 더 이전 조선시대 핵심 서울 관문은 '새재'였다. 태종 때 그걸 통과하는 '영남대로'라는 새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하나, 새재 또한 고려 때까지는 별로였다. 더 앞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고개는 '겨릅재'였다. 한강 유역 진출을 위해 신라가 서기 156년에 개척한 후 고려 때까지 사용된 것이다. '껍질 벗긴 삼대'를 가리키는 '겨릅'이란 말에서 유래되고, 한자음으로는 '계립령'이라 표기되며, 지금은 '하늘재'라 불리는 그 고개다.
이들 이우릿재'새재'겨릅재의 공통점은 모두 문경읍에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유례 드문 산악지대라는 문경 땅이 어떻게 그리 중요한 길목이 돼 왔을까? 낙동강과 한강의 연결 가능성에 그 비밀의 열쇠가 있다.
하류로부터 보자면 낙동강은 경남 창녕 즈음에서부터 대구'구미를 거쳐 북으로 거의 똑바로 뻗는다. 하지만 상주를 거친 뒤엔 안동을 향해 완전히 동으로 굽어 가버린다. 강 주변 들길을 이용해 서울로 향하던 옛날 길손이라면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일이다.
하나 그 앞을 막아선 대간만 정면 돌파해 낸다면 상황은 급반전된다. 그 너머에선 곧바로 충주호 즈음의 한강을 만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가장 좋은 교통수단이 배였으니 그런 횡재가 없는 것이다. 문경은 그렇게 북으로 길을 여는 돌파구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연결 구간이 문경인 것도 그래서다.
이우릿재'새재'겨릅재는 그 순서대로 서에서 동으로 인접해 있다. 그 사이는 백두대간 중에서도 환한 바위봉우리들이 가장 화창하게 펼쳐지는 구간이다. 남쪽서부터 보자면 가은읍의 대야산'희양산을 지나며 놀라운 풍광을 일군 대간이 문경읍에 들어 이우릿재를 건너자마자 조령산'신선봉으로 선경을 이룬다. 새재를 지나서는 부봉 여섯 봉우리가 가슴 두근거리게 하고, 이어 하늘재를 건너자마자 포암산이 보는 이를 절로 감탄케 한다.
이런 절경 속의 하늘재가 다음 주쯤 '명승'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작년 말 새재 및 죽령 옛길이 그렇게 지정된 뒤를 잇는 일이다. 문경읍에서는 자동차로도 접근 가능한 곳이니 한번쯤 가족 나들이 나서 볼 일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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