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불화와 생활고 속에서 양아들(12)을 키워오던 Y(50)씨. 그는 지난 7월말 아이가 공부도 하지 않고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다며 야단쳤다. 평범한 꾸중으로 끝났을 일이었지만 '아빠가 사준 컴퓨터 아니냐'고 아이가 대들자 Y씨가 격분, 아이를 목졸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아이의 시신은 청도의 한 복숭아밭에서 불태워 버렸다. 그는 24일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Y씨의 재판이 있은 날 자정쯤 대구 서구 원대동 한 빌라에서는 L(40)씨가 목매 숨진채 발견됐다. 2년 전 이혼한 L씨는 어린 두 자녀의 양육을 어머니에게 맡겨왔지만 최근 직장을 잃자 양육 부담을 고민해왔었다. 그는 애인에게 자신이 목 매는 장면을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보여줬다.
◆불경기 영향?=각종 범죄 형태가 갈수록 독(毒)해지고 있다. 홧김에 저지르는 범죄는 더욱 잔인하고 대범해지고 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도 모방·확산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로 나타난 불안 심리가 범죄로 표출되면서 사회병리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박순진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적·가정적 어려움 속에서 자포자기하는 서민들이 늘수록 흉악범죄도 늘어나고 있다"며 "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수록 이러한 현상은 가속된다"고 말했다.
실제 살인·방화·강도·강간·유괴 등 흉악사범의 증감은 경기와 무관치 않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흉악사범자 수가 IMF 당시였던 1998년 1만656명까지 늘었지만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2002년 6천281명으로 감소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강력 범죄자는 2004년 7천529명으로 늘었다가 2005년 6천263명으로 다시 줄었다. 하지만 사회양극화가 심해지는 2007년 7천881명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흉악·모방범죄 기승?=24일에는 빌려간 800만원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옛 애인(25·여)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자루에 넣어 고물상 마당에 버린 20대 남성이 경주에서 붙잡혔고 같은날 경기도 포천에서 운다는 이유로 6살짜리 딸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숨지게 한 30대 남성도 있었다.
고(故) 안재환의 자살 방법을 모방한 사례도 잇따라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지난 1일 대구 남구의 한 원룸에서는 주식투자로 수천여만원을 날린 고교 교사 K(40)씨가 방 안에 연탄화덕을 피워놓은 채 목숨을 끊었고 지난달 25일 경주에서 K(29·여)씨 등 20대 남녀 두 명이 차 안에서 연탄가스에 질식해 숨진채 발견됐다. 지난 13일 부산에서는 여고생이 성적을 비관해 렌터카 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줬다.
대구대 홍덕률 사회학과 교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불황속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쉽게 삶을 포기하고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대구 한 경찰관은 "요즘 범죄 경향을 보면 범행에 앞서 주저하는 경우가 적은 것 같다. 표적이 남이든 자신이든, 수법이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무척 독해지고 있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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