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이 서예연습을 하고 나서 못쓰게 된 자투리한지를 이용, 필통과 같은 소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승공예의 효시입니다." 지승공예는 한지를 길게 찢어 실처럼 비벼 꼰 후 이를 이용해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들었던 전통 민예품 제작의 한 방법. 한때 지승공예는 조선 중엽까지 번창하면서 솜씨 좋은 장인들이 한지로 짠 제품들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사찰이나 낙향한 시골선비들에 의해 겨우 그 명맥이 유지돼 왔다.
솔가 신계원(72)씨는 1979년에서 1980년 사이 스승인 김영복(충남 무형문화재2호, 작고)으로부터 전수해 30년째 대구에서 지승공예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승공예법으로 짠 요강에 옻칠을 하면 가볍고 밤에 소리도 나지 않아 조선시대엔 새색시들이 시집갈 때 필수 혼수품으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지승공예 기법은 비벼 꼰 한지가닥을 엮어서 만드는 방법과 삼베나 두꺼운 종이로 일정한 틀을 먼저 만든 후 표면에 꼬아 두었던 지승을 풀로 붙여 다양한 문양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이때 한지의 먹물글씨는 바깥으로 드러나게 꼬는데 다 꼬인 지승에 나타나는 먹물 빛은 지승공예의 멋스러움을 좌우하는 포인트가 된다. 신씨가 지승공예를 배우게 된 계기는 교편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신문지상에 소개된 스승의 작품을 보고 호기심이 일면서부터다.
"못쓰는 고서를 찢어 만든 지승공예품에 끌려 무작정 찾아가 배우게 됐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종이를 꼴 때 손에 물을 묻혀야 하지만 그래도 매일 꼬박 8시간씩은 작업에 매달립니다." 그는 이후 스승에게서 배운 항아리지승기법에 짚풀공예기법을 더해 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은 대개 작은 소품 2~3개월, 큰 작품 4~5개월 정도 걸린다. 실제로 장식용 지승오리는 물에 띄우면 정말 살아있는 오리처럼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띨만큼 정교하다. 요강을 비롯해 가방, 작은 책상, 망바구니, 등갓, 십각반 등 현재 그가 지승공예로 만들어 내는 작품은 제한이 없다.
신씨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승공예의 기법과 응용'이란 책을 펴냈으며 2003년엔 41개국 800여 장인이 솜씨는 겨루는 세계공예대전에서 지승공예를 이용한 바구니 작품으로 특선에 들었으며 국내의 각종 공예전에서 장려상을 포함해 35차례나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올 10월엔 재단법인 종이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종이문화인 특별상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지승공예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오히려 빛깔은 화려하지만 기법은 비교적 간단한 색지공예가 더 각광 받고 있다. 색지공예는 선비들의 공예인 지승공예에 비해 규방에서 여인들이 주로 했던 공예기법. 이에 대해 신씨는 "열심히 하면 국가에서 언젠가는 기능을 인정해 주지 않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지승공예로 열쇠고리 등을 만들면 대신 팔아주는 가게가 있었지만 이젠 그마나 문을 닫았단다.
현재 전국적으로 지승공예가는 약 50명이 활동하며 그 중 50세가 넘는 공예가는 10여명선. 대구엔 신씨에게 솜씨를 전수받은 4명의 제자가 지승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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