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로골프 선수가 우승 트로피가 아니고 상금으로 받은 백만달러를 안고 포즈를 취한 사진은 문득 수백장의 달러지폐를 캔버스 가득 그렸던 앤디 워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비엔나에 갔을 때 거리에서, 수북이 쌓아놓은 금괴 앞에서 흐뭇해 하는 멋진 신사의 모습을 그 옆에 궁상스런 표정의 노동자가 벽돌을 쌓고 있는 모습과 대조시키는 대형사진 간판을 보고 당혹감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로또' 광고였다. 한 치의 위선도 망설임도 없이 돈에 대한 환심을 야비하게 자극한다 싶었지만 한편 통렬한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팝아트도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들을 활용해서 단순히 재밌거나 장식적인 내용을 개념 없이 추구하지만 그 속에서 예리한 해학을 느낄 때가 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모든 것은 자기 그림 또는 자신의 표면(surface)에 있지 겉모습 아래 감춰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개 통조림 캔이나 콜라병과 같은 일상용품들이거나 대중스타의 초상 아니면 꽃 같은 장식적인 이미지들을 추구한 탓에 어렵지도 않고 색채와 형태는 산뜻하고 명확해서 그 자체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 미술의 초월주의나 엄숙주의, 엘리트적인 권위 등과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여 사실상 미학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큰 의의가 있지만 그는 항상 상업주의나 통속주의에 따르는 것처럼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아무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한 소재들이 사회를 향한 신랄한 풍자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전기의자'는 사형집행 방식을 두고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의 '권총' 그림은 한 광적인 여성 팬으로부터 저격을 받아 죽을 뻔 한 뒤, 바로 그 암살사건에 사용된 것과 동일 타입이어서 총기소유의 자유로 미국 사회가 겪을 홍역을 암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값싼 이미지들과 함께 무의미한 듯 그린 '돈'이나 '낫과 망치', '십자가' 등도 모두 의미심장한 당대의 상징적 아이콘들이었다.
시그마 폴케의 작품들은 미국 팝아트와는 또 다른 독일적인 팝아트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90년대 후반 작들은 독일 신표현주의적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 역시 대중매체에 의해 널리 전달된 이미지들이란 점에서는 팝아트의 분위기를 닮고 있다.
그러나 인쇄된 이미지들을 확대할 때 드러나는 망점들을 통해 다시 그 대상을 묘사한다. 그 배경은 추상표현주의 스타일의 붓질이나 채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위에 번지고 흐르는 물감의 유동성을 활용한 자발성의 표현들을 만들어 초현실적인 모호한 느낌을 낸다. 이렇게 중층적으로 만들어진 화면상의 변화들 때문에 재현적인 이미지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개념을 전달하기보다는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상업적인 문화나 정치권력 등을 풍자하는 역설적인 텍스트를 제목으로 사용하여 비판적인 상상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현대사회와 대중문화를 비판적 거리에 두고 관조하는 듯 풍자하는 그의 예술은 경험이나 깊은 사색, 철학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발랄하고, 익살스러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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