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불어 사는 세상] 학산야간중고교

지식 나눠드리는 보람…"피곤해도 쉴수 없죠"

▲ 학산야간중고교 교실에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학생과 교사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 학산야간중고교 교실에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학생과 교사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지난 24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 월성동 학산종합사회복지관에 있는 학산야간중고등학교 고등반 교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 60대 여성 10여명이 화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온반응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교사의 얘기를 하나라도 놓칠까봐 귀를 쫑긋 세운 것은 물론 수업 내용을 꼼꼼히 노트에 적는 데 열중했다. 경남 거창 가조익천고 과학교사로, 학산야간중고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3년째하고 있는 배우범(50) 교사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했다. 고등반 반장을 맡고 있는 이모(54·여)씨는 "선생님들이 저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요점정리를 깔끔하게 해주신다"며 "사제 간에 정이 돈독하다"고 귀띔했다. 적지 않은 중년의 나이지만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겨울 추위도 저만치 달아났다.

1998년 문을 연 학산야학이 올해로 꼭 10년째가 됐다. 그해 12월 지금 교장을 맡고 있는 고정조씨를 비롯 현직교사, 직장인, 대학생 10명이 학산야간학교라는 이름으로 중학과정 1개반을 만든 게 학산야간중고교의 시초였다. 이후 10년 동안 중학교 9회, 고등학교 8회 등 모두 200여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대학을 진학한 사람이 30여명에 이르는 등 학산야학은 '만학(晩學)의 꿈'을 키우는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학산야학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학생과 교사, 그리고 후원자들의 땀과 열정으로 기적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1999년 3월 중등반 12명이 모집이 되어 입학식을 하고 1년 뒤 그 10명이 고입검정고시에 합격, 2000년에는 고등반이 만들어지고 중등반은 새로운 신입생을 받았다. 초기엔 청소년 50%, 중장년층(30~50대) 50%씩이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청소년은 줄어들고 중년 여성들이 크게 늘어났다. 야학 설립 2년 뒤에는 고등반 1회 졸업생 10명 가운데 9명이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해 대구대(1명), 방송통신대(2명), 전문대학(1명)에 각각 진학하는 성과를 거뒀다.

월~금요일에, 오후 6시 30분부터 9시까지 하루 2시간 30분씩 공부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학산야간중고교 학생들의 합격률은 괄목할 정도로 높다. 검정고시 합격률이 고입은 80~90%, 고졸은 70~80%로 일반 학원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 비결은 단순문제풀이식 교육이 아닌 정규학교와 똑같은 학창 경험과 느낌을 학생들에게 선사하는 덕분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중등반 반장 김모(58·여)씨는 "선생님 모두가 열정적으로 가르쳐줘 공부하는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중년들은 물론 70대에 가까운 어르신들도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덕분에 합격률이 높다"고 귀띔했다.

2007년 8월 학산야간학교에서 교명을 바꾼 학산야간중고교에는 현재 중등반 23명, 고등반 19명이 공부하고 있다. 야학 교사는 12명. 10년째 자원봉사를 하는 고 교장(고등반 수학)을 비롯 1년에서 8년 동안씩 봉사를 하는 교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직교사가 5명이며 교사자격증 소지자 1명, 대학원 졸업자 3명, 학원강사 3명 등으로 모두가 실력을 겸비했다. 직업 또한 현직교사 공무원 사업 학원강사 등 다양해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경험도 들려주고 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7년째 과학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경상공고 이동현(30) 교사는 "몸이 피곤하거나 일이 있을 때엔 야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거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꼬박꼬박 강의를 하고 있다"며 "수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했다. 3년째 사회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는 달서구청 조기태(54) 비서실장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하다 보면 그날 직장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하게 달아난다"며 "가르치면서 느끼는 행복감도 매우 크다"고 얘기했다.

2007년 이전에는 전용 교실이 없어 복지관의 다른 교실을 같이 썼던 학산야간중고교는 작년부터 복지관 내 목욕탕을 개조, 중등반과 고등반 두 개의 야학 전용 교실을 갖췄다. 내년 4월에 졸업하는 고등반 학생 중 5명이 고졸검정고시에 조기합격했으며 그 중 2명은 2009년도 대학입시에서 대구공업대학 사회복지과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학교 졸업생들은 매년 스승의 날 학교를 찾아와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는 것. 고 교장은 "지금은 중장년층 위주의 야학이지만 앞으로는 정규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문의 053)634-7230.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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