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은행에 공적자금지원 검토 왜?

정부가 은행의 자본을 늘려 대출여력을 키우겠다며 공적자금에 준하는 성격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의 건전성 여부를 알 수 있는 척도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너무 낮아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어 후순위채 발행과 증자 등 자구 노력을 유도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은행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정부가 공적자금을 주겠다는 것인가?

금융소비자들은 은행창구 너머 깊숙한 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정부, 은행 자본여력 키우겠다

정부는 우선 10조원 규모로 조성 예정인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일부 자금과 산업은행, 연기금 등을 통해 은행의 후순위채를 사들이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로 사들이는 은행채의 10% 안팎이 후순위채인데 이 후순위채의 매입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BIS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공사채를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대상에 넣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사들여 BIS 비율을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은행 부실채권의 매입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캠코는 12월에 4천억원 정도의 공사채를 발행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검토 중으로 자본금이 늘어나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더 많이 사들일 수 있다.

원칙대로라면 은행이 부실에 빠져야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부실 우려가 있을 때 선제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공적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의 자구 노력에 맞추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의 지원책을 펼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은행에 무슨일 생겼나?

은행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은행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창구 너머로 들어가 돋보기를 들고 은행 내부를 들여다보자. 지금 국내 상당수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자산건전성 기준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은행 금고에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이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다보니 기업들은 물론, 가계에 대해 원활한 대출이 이뤄질리 없다. 때문에 정부가 나서 은행의 자본규모를 키워 대출시장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왜 어려운걸까?

"그동안 장사를 너무 쉽게 했다. 요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최근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을 향해 던진 말은 은행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가 은행들의 잘못된 영업행태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부동산 붐이 일어나던 2004년 무렵부터 대출경쟁을 벌였다. 떼일 염려가 적은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맞붙은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대한 대출규제에 나서자 이번엔 기업대출시장으로 옮겨가 역시 대출경쟁을 벌였다. 필요한 기업에 빌려주는 사례도 있었지만 은행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부채 상환 능력이 낮은 중소기업에까지 대출 권유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은행들은 예금을 통해 대출재원을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수수료 수입을 받아챙길 목적으로 펀드를 열심히 팔았다. 대출을 엄청나게 늘리면서도 예금받기는 소홀히 했다. 2006년 말 109%였던 예대율은 지난 9월말 현재 124.2%까지 악화했다. 예금으로 받은 돈은 100원 뿐인데 빌려준 돈은 예금보다 무려 24원이나 더 많아진 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대출재원이 모자라자 이번엔 채권발행을 마구 늘리기 시작했다. 2006년 95조3천억원이던 국내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 잔액은 1년 뒤 121조2천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 9월 말 현재 134조6천억원으로 불어났다.

결국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자 은행권은 기업에 대한 신규 대출 정지는 물론, 기존 대출분마저 속속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은행의 부실이 경제 전체에 주름을 가져온 것이다.

◆은행들 "억울하다"

대구은행 한 관계자는 "대구은행은 올 3/4분기말 BIS비율이 11.84%로 전국 은행권 중 최고다. 일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문제를 갖고 모두 잘못한것처럼 함께 책임지우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도 "은행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정부가 지나치게 '관치형'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권순우 삼성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09년 한국경제전망' 세미나에서 "국내 은행들이 선진국의 대형은행들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며 "정부가 (BIS비율을 늘리려고) 지분 투자를 목적으로 공적자금을 넣을 시기는 아니다"고 했다.

한편 금융시장내에서는 은행에 대한 지원에 앞서 '책임묻기'도 있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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