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조원대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 '절망의 수렁으로…'

김모(51·여)씨는 요즘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며 사채를 기웃거리고 있다. 신용 카드사와 은행으로부터 날아드는 빚 독촉 고지서 때문이다. 그는 한 달 전 대구에서 터진 4조원대 불법 다단계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김씨는 "나와 남편 명의로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지난 1년간 대출받은 돈이 모두 3억원이나 된다. 투자 첫 해 배당금이 잘 나오는 것을 보고 빚을 내 투자액을 늘린 게 화근이었다. 최근에는 보험까지 해약했지만 매달 이자를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생활정보지를 다시 펼쳤다.

4조원대 불법 다단계 사기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째를 맞았으나 피해자들은 별다른 대책없이 절망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빚을 내 투자 규모를 늘인 피해자들은 대출 상환을 위해 고리의 사채에 손을 대거나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거리로 나앉은 이들도 많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거나 생업까지 포기한 채 사건 주모자들을 찾아나선 피해자들도 있다.

주부 이모(42·대구 달서구)씨는 보름 전 빚쟁이들을 피해 아예 집을 나왔다. 그는 친구와 친척 등 지인 10여명으로부터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씩 모두 2억원의 빚을 내 투자를 했다. 이씨는 "텅 빈 통장에 보험 해약 증서까지 보여주면서 '다음달까지 갚겠다'며 겨우 돌려보냈다"면서 "시부모와 남편에게 투자 사실을 숨겨왔는데 도저히 낯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한 달 센터와 찜질방을 오가며 잃은 돈을 일부라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사기 주모자를 찾아 나선 피해자들도 있다. 성주·성서 피해자 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실질적 대표인 조희팔을 찾는 전단지 수천장을 만들어 인천, 부산 등지를 돌아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특히 조씨가 중국 심양으로 잠적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심양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이들의 소재를 수소문하고 있다. 경찰은 "해외 출국설은 뜬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신들을 끌어들인 센터장이나 상급 투자자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 피해자는 "이들이 주도적으로 투자를 독려하고 교육을 담당해 피해를 키웠다"고 화를 삭이지 못했다. 이들은 최근 대구지검에 센터장들로 인해 120여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피해자 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대구와 경북만해도 지역별·센터별로 수십여개 비상대책모임이 꾸려졌다"며 "경찰 수사를 기다리지 못해 피해자들 스스로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빚은 불어나고 지푸라기 같던 희망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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